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복잡하고 어려운 지식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 하여 설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그 어려운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이렇게 넓은 영역을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간결함과 명쾌함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반드시 곱씹어 보아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여졌다는 측면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오래전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책을 읽어 왔고, 작년부터 방통대 경제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쌓은 지식 덕분에 이 책의 내용은 낯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던 지식들을 빠르게 정리해볼 수 있어서 유익했고, 몇몇 주제들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쉬운 예제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에서는 세계를 단순화하여 이해하기 위해 이분법을 사용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로 대표되는 양쪽의 입장을 균형있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보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쪽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율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만한 정치제도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욕먹고 비난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정당이 아니라, 어떤 정당이 자신을 대변하는지 모르고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엉뚱한 생각인지 몰라도, 전 국민이 이 책을 읽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노동자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원인에 대해서 명쾌하면서도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 기업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상을 비판 없이 수용한다면 우리는 수준 이하의 보수 정당에게 정권을 맡기게 될 것이고 우리의 삶은 더 어려워 질 것이다.

새벽의 나나

사내 독서 모임을 통해 읽게 된 소설. 동료들과 함께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읽다가 중단했을 것이다. 밝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소설의 첫 인상은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스토리보다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하며 읽어나갔다.

망막에 맺히지 못한 가로수들이 환영처럼 녹아 뒤편으로 흘렀다. 시간이 바람을 타고 귓가에 스쳤다. 레오는 계속해서 걸었다. 뺨에 닿는 공기가 낯익은 숨결처럼 차분히 느껴질 때, 레오는 자신이 십오 년 전의 그날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조금씩 꾸준하게 읽던 중 나도 모르게 소설에 빠져들었다. 나는 레오가 되었고, 답답할 때면 우웨를 만나러 갔고, 때로는 에릭의 충고를 듣기도 했다. 플로이를 포함해 레오가 태국에 있던 시간동안 함께 했던 매력적인 주변인물을 언제든 원하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을 끝까지 읽었을 땐 그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다.

같은 작품을 읽고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배울 것이다. 나의 경우 이 소설을 통해 깨달은 것은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재단할 수 없고, 재단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레오가 전생의 전생을 보게 되는 순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슬펐다. 그토록 한계가 빤히 보이는 능력을 가졌다는 게 슬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우리 중에 살인자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아니었고 도둑이 아니었고 희생양이 아니었던 자는 없기 때문이다. 윤회의 풍차에서 불어오는 영겁의 바람은 모든 영혼의 이력을 평평하게 만들어놓았다. 단지 순서가, 오늘 여기서 맡은 배역이 다를 뿐이다. 우리 중에서 매춘부로 살아보지 않은 자는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우리들에게 매춘부, 게이, 성전환자인 소이 식스틴의 친구들의 삶은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그들과 친구가 된 후에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려는 생각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힘들게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설을 다시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 작품은 예외적으로 언젠가 다시 읽게될 것 같다. 소이 식스틴의 친구들이 그리워질 때…

만화 김대중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서 지난 총선 여수을에 출마한 백무현 후보가 암으로 선거 운동을 중단했고 낙선했으며 지금도 암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오래전에 구입해서 읽었던 ‘만화 박정희’, ‘만화 전두환’을 그린 화백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만화 김대중’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거실 책장에 ‘김대중 자서전’이 있고, 4분의 1 정도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 알게된 김대중은 동시대를 살았다는 사실이 영광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면에서 뛰어난 인물이었다. 2013년 광주 여행에서 김대중 박물관을 방문했던 기억까지 더해져, 그가 주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너무 어려서 그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방대한 ‘김대중 자서전’을 다 읽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는데, 5권의 만화로 구성된 ‘만화 김대중’ 덕분에 그의 삶을 부담없이 짧은 시간 내에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참고했던 수 많은 참고서적 만큼이나 김대중 대통령의 과오까지 빠짐없이 드러내는 등,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의 근대사를 빠르게 훓어보면서 아쉬움을 느낀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아닌 김대중이 당선되었더라면,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김영삼이 힘을 합쳤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했던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는 정치인은 저마다 다른 해석과 해법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삶이 아닌 다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기본 이상의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정치인 중 정점에 서 있는 대통령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과거에 우리는 좋은 대통령을 가졌었고,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낌과 동시에 다음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성격검사

특별한 동기 없이 회사 동료 따라서 2가지 종류의 성격검사를 받게 되었다.

  • EPID 에니어그램 심리역동검사 (비진단 검사)
  • TCI 기질 및 성격검사 (진단 검사)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상담도 받았는데, 검사 받길 잘 한 것 같다. 비교적 객관적인 검사를 통해 막연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확인하고 나니, 앞으로 사회생활하면서 그 부분을 조심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니어그램

에니어그램에 따르면 나는 6유형의 사람이다. 안전을 추구하고 로열티가 높은 타입으로서 대기업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검사 결과지에 나타난 특징은 다음과 같다.

논리, 정보, 근거에 의한 객관적인 의사결정
딱딱하고 논리적인 말투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경향
안전하고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을 즐겨하며 꼼꼼하고 잔걱정이 많음
의심, 불안 때문에 소심해져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향
깔끔하고 정돈된 것을 좋아함
주어진 것들을 신중하게 여러 번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주변으로부터 믿을만하다는 평가를 듣는 편

인터넷 검색 결과 아래와 같은 특징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임감이 강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유형으로서 친구나 자기가 믿는 신념에 가장 충실한 사람들이다.
전통이나 단체에 강한 충성심을 갖고 있으며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대단하다.
신중하며 거짓말을 모르는 그들은 협조적이며 조화를 이루며 믿음직스럽다.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유형이다.
‘책임감이 있다’, ‘성실하다’, ‘충성스럽고 믿을 만하다’는 말에 가장 큰 만족을 얻는다.

TCI 기질 및 성격검사

평소에 느끼던대로 전반적으로 자존감,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타고난 기질로 판단해 보았을 때 호기심이 부족한 편이고, 사회적 민감성이 대단히 높아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잘 받는 편이라고 한다. 정서적 감수성과 개방성, 친밀감 점수가 높게 나왔는데, 인간관계를 넓게 가져가진 않지만 마음이 통하는 소수에게는 내 속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편이다.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지만, 관습과 원칙을 따르려는 모습 때문에 다소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인물로 비춰질 수 있음

대체로 좋은 내용이 많이 나왔지만 권위주의적이라는 지적은 소프트웨어를 하는 사람으로서 뼈아프게 다가왔다. 꼰대가 되기 쉽다는 것 아닌가?

Wrap-up

두 종류의 검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나라는 사람을 제법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그동안 생각해왔던 나의 강점과 약점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재미로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한 밑거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 타고난 호기심이 적은 편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보다 현재 마주한 문제에 몰두하는 연구자 타입이다.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야겠지만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가져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성실, 원칙, 규율 등의 가치는 좋은 것이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조금 다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래머가 자발성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조직 단위의 원칙, 규율은 적을수록 좋다. 엄격한 규칙은 자신에게만 적용하자. 다른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자.
  • 걱정이 굉장히 많은 편이었는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내려 놓으려고 노력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지금 바로 노력을 시작하는 습관을 들이면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 타인의 반응에 영향을 잘 받는 편이었는데, 이 역시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많이 좋아졌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일이 생겨도 이제는 그 사람 나름대로 그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마음을 버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해주는 것 만으로도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