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장미빛 미래를 눈 앞에 두고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젊은 신경외과의사의 이야기. 2015년 3월 세상을 떠난 폴 칼라니티의 나이는 36세로 지금의 내 나이와 같다. 그는 평생 인간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문학, 철학, 과학, 생물학을 탐구했으며, 이 모든 학문에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공부한 후 신경외과 의사가 되었다. 그는 먼 미래에는 외과 의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무수히 많은 죽음과 싸웠고, 죽음을 이길 수는 없었지만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웠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그가 폐암을 선고받은 후에도 변함이 없어, 그는 다시 수술실로 돌아간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I can’t go on. I’ll go on.)

그는 고통을 참으며 수술실에서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7년의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는데 필요한 기준을 모두 충족시켰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책의 마지막에는 폴의 아내 루시가 쓴 글이 담겨 있다. 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져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폴이 보여준 용기를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불치병에 걸렸어도 폴은 온전히 살아 있었다. 육체적으로 무너지고 있었음에도, 활기차고 솔직하고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내게 가장 그리운 폴은 연애하기 시작했을 때의 팔팔하고 눈부셨던 그 남자가 아니다. 뭔가에 집중하는 아름다운 남자였던 투병 말기의 폴, 이 책을 쓴 폴, 병약하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았던 그 남자가 그립다.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이어 이 책을 읽으며, 삶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것을 이룰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어떤 책에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상실의 시대의 작가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이 책은 오랫동안 읽기목록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리기라는 주제는 나에게 특별하다. 20대 초반 100kg이 넘는 체중으로 건강까지 악화되었을때,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300m부터 달리기를 시작했고, 달리는 거리는 점점 늘어나 한때는 하프마라톤까지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바쁜 업무로 하프마라톤 출전은 좌절되었으나 10km 단축 마라톤 코스는 여러 번 뛰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읽었던 책이, 독일 외무부 장관을 지냈던 요쉬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였는데, 이제는 달리기를 생각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단순히 달리기 경험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달리기를 축으로 인생을 회고한 책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30대 초반 전업 작가의 길로 접어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가기 위해, 작가에게 필요한 집중력과 지속력을 얻기 위해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풀코스를 완주하여 이 책이 출간될 당시까지 26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기 위해 끝없이 정진하는 모습은 존경심을 자아냈다. 달리는 행위가 무익하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했다는 사실은 남는다는 생각과 자신의 묘비명의 문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로 쓰고 싶다는 소망은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언젠가부터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고 있는 자신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꾸준히 자기계발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을뿐 조금만 피곤하면 내일로 미루는 일이 다반사다. 노력해도 결과가 금방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조급함에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추운 겨울이지만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려 한다. 달리기는 즐거울 때도 있지만 보통은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을 이겨내고 목표한 만큼을 뛰어내는 것으로부터 삶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으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적인 마라토너인 세코 도시히코에게 달리고 싶지 않은 날, 쉬고 싶은 날이 있었냐고 물었고, 세코 도시히코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늘 그렇습니다!” 편안한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 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느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생동감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달릴 것이다.

부하직원이 말하지 않는 진실

2017년에 읽은 첫 번째 책은 “부하직원이 말하지 않는 진실”이다. 최근 파트 리더를 맡게 되면서 적잖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제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책을 선택할 때, 조직 문화, 리더십에 대한 책을 찾게 된다.

오래전부터 조직 문화, 리더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 왔지만, 실전을 경험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짧은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내용, 미처 깨닫지 못하고 실수하고 있었던 내용들을 이 책에서 확인하고 정리해볼 수 있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스스로를 점검하기 위해서 요점을 에버노트에 기록했다. 잘 하겠다는 다짐으로 파트 구성원들과 나의 리더에게 공유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무겁게 받아들인 것은, 리더의 말과 표정 그리고 전문성에 대한 것이다. 리더의 원칙 없는 말 한마디는 불필요한 일을 만들고, 리더의 불편한 표정은 구성원을 불편하게 만든다. 리더의 내공이 높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리더의 수준에 맞춰 일을 하게 된다. 리더도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이 책과 굿보스 배드보스의 가장 큰 공통분모는 리더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것이다. 리더는 구성원들이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 것 하나만 잊지 않는다면 잘 해낼 수 있을거라고 믿고 있다. 모든 부차적인 노력은 이러한 본질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What makes us feel good about our work?

TED: What makes us feel good about our work?

레고 조립 실험, 종이 접기 실험, 이케아 가구 조립 경험 등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동기를 얻는지를 설명한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가치 있는 일인가? 일에 의미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 노력이 필요한 일인가? 그 일 안에 나의 존재를 드러낼 공간이 필요하다.

시애틀의 큰 소프트회사(아마도 아마존?) 사례에서 아무런 설명 없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을 때, 엔지니어들이 느끼는 감정은 작년에 우리가 느꼈던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왜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는지 설명하고 사과한다거나, 노력의 결과물이 다른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설명했더라면 작은 노력으로도 직원들이 동기를 잃는 것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아담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를 비교한 내용이 재밌었다. 산업 사회에서는 아담 스미스의 분업을 통한 효율성 추구가 적합했지만, 지식 경제 사회에서는 칼 마르크스가 강조한 일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