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걸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가 딸을 생각하며 추천한 책. 나무를 연구하는 과학자 호프 자런의 이야기를 읽으며 유시민 작가가 그랬던 것 처럼 나도 큰 위로를 받았다. 나도 나의 아내도 우리 딸도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열심히 살다보면 가끔은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 힘을 얻기도 한다.

“모든 게 정말 고맙습니다. 저한테는 큰 의미가 있어요.” 뭔가 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싶었지만 더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덕분에 해고되기 전에 2년 이상은 더 버틸 수 있을 거 같아요.” 내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아, 넌 잘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에드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때까지 너무 지치지 않도록 조심해. 알았지?”

내 몇 년에 걸친 노력을 완곡하게 인정해준 그의 말 덕분에 이별이 더 가슴 아팠고,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호프 자런 곁에 빌이 없었다면?’ 책을 읽는 내내 마음 속에 가졌던 질문이다. 서로의 영혼을 보듬어 주었던 그 둘의 우정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빌의 바로 앞에 앉아서 고개를 쳐들고 그를 바라봤다. 빌이 지금 하고 있는 일, 빌이라는 인간, 그리고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똑바로 목격하는 증인으로서 그를 바라봤다. 그곳, 세상의 끝에서 그는 끝이 없는 대낮에 춤을 췄고, 나는 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 지금의 그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를 받아들이며 느껴진 그 힘은 나로 하여금 잠시나마, 그 힘을 내 안으로 돌려 나 자신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도록 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도 대단하지도 않다는 것을 30대 후반에 접어든 요즘 종종 생각한다. 세상을 만만하게 보았던 자만심이 무력감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하며 세상에 작은 것 하나라도 보탤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오히려 개미에 가깝다. 단 한 개의 죽음 침엽수 이파리를 하나하나 찾아서 등에 지고 숲을 건너 거대한 더미에 보태는 개미 말이다. 그 더미는 너무도 커서 내가 상상력을 아무리 펼쳐도 작은 한구석밖에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다.

어렵게 시작했지만 빌과 함께한 긴 여정 끝에 그녀의 삶은 완벽한 균형을 이룬듯 보인다. 아이를 재우고 실험실을 향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용기를 얻는다.

나는 자전거 헬멧을 쓰고 실험실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나의 심장 다른 쪽 절반을 바치며 나머지 밤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화 토지

광교푸른숲도서관에 처음갔을 때 처음 빌린 책. 4월 25일에 1권을 빌린 것을 시작으로, 9월 2일 마지막 17권 읽기를 끝냈다.

아주 오래전 소설책으로 시작했을 때는 인물 관계도를 연습장에 그려가며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1권조차 다 읽지 못했는데, 만화 토지는 매권마다 앞부분에 인물 설명과 줄거리가 있어서 오랜만에 읽어도 따라갈 수 있었다. 만화인데도 불구하고 집중력이 자꾸 달아나는 것을 경험했는데,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큰 줄기의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인물들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나열하는 방식이어서 그렇다는 것을 작품해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책에 등장한 수많은 인물들을 돌아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신분제도, 일제탄압, 전쟁 등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 사람들. 그들이 바랬던 꿈과 사랑이 아프게 다가온다.

분, 초로 나누어보면 흘러가버린 시간이 얼마인가. 천문학적 숫자다. 그 많은 숫자속에 순수한 자신의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을 서희는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태어난 것은 큰 축복이다. 내가 가진 것들을 통해서 그리고 나의 노력으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가까이는 딸을 포함한 우리가족, 멀리는 회사 동료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