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나나

사내 독서 모임을 통해 읽게 된 소설. 동료들과 함께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읽다가 중단했을 것이다. 밝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소설의 첫 인상은 너무 어두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스토리보다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하며 읽어나갔다.

망막에 맺히지 못한 가로수들이 환영처럼 녹아 뒤편으로 흘렀다. 시간이 바람을 타고 귓가에 스쳤다. 레오는 계속해서 걸었다. 뺨에 닿는 공기가 낯익은 숨결처럼 차분히 느껴질 때, 레오는 자신이 십오 년 전의 그날로 돌아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조금씩 꾸준하게 읽던 중 나도 모르게 소설에 빠져들었다. 나는 레오가 되었고, 답답할 때면 우웨를 만나러 갔고, 때로는 에릭의 충고를 듣기도 했다. 플로이를 포함해 레오가 태국에 있던 시간동안 함께 했던 매력적인 주변인물을 언제든 원하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을 끝까지 읽었을 땐 그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꼈다.

같은 작품을 읽고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배울 것이다. 나의 경우 이 소설을 통해 깨달은 것은 그 누구도 타인의 삶을 재단할 수 없고, 재단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레오가 전생의 전생을 보게 되는 순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슬펐다. 그토록 한계가 빤히 보이는 능력을 가졌다는 게 슬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우리 중에 살인자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아니었고 도둑이 아니었고 희생양이 아니었던 자는 없기 때문이다. 윤회의 풍차에서 불어오는 영겁의 바람은 모든 영혼의 이력을 평평하게 만들어놓았다. 단지 순서가, 오늘 여기서 맡은 배역이 다를 뿐이다. 우리 중에서 매춘부로 살아보지 않은 자는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우리들에게 매춘부, 게이, 성전환자인 소이 식스틴의 친구들의 삶은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그들과 친구가 된 후에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려는 생각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힘들게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설을 다시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 작품은 예외적으로 언젠가 다시 읽게될 것 같다. 소이 식스틴의 친구들이 그리워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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