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회에서는 10km 이후 이어지는 업·다운 힐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의식하지 않고도 쉽게 넘을 수 있었다. 광교호수공원에서 업·다운 힐을 반복해서 달린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잠실대교에 가까워졌을 때 힘들었던 JTBC 풀코스를 떠올리며 잠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번 대회는 급수는 훌륭했는데 짐 찾는게 레이스보다 더 힘들었다. 2026 경기수원국제하프마라톤과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보온용 은박 담요를 나눠주지 않았다면 몇 명 쓰러졌을거라는 이야기가 나올정도로 비는 쏟아지고 춥고 오래 기다려야했다.
짐을 찾은 후 잠시 종합운동장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비를 맞으며 옷을 꺼내 입으려고 했다. 손이 얼어서 짐 보관백을 여는 것도 여의치 않았고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 때 brrr 크루 소속의 처음 보는 젊은 여자분이 우산을 씌워주고 짐보관백 여는 것을 도와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그 분이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달리기를 생각할 때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공식기록 기준 2025 MBN 서울마라톤과 비슷한 기록을 남긴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겨울 훈련을 그럭저럭 잘 소화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덜 힘들게, 끝까지 쥐어짜지 않고 안정적으로 레이스를 운영했다는 점에서 성장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오늘 최선을 다 했을까?’
모든 구간에 최선을 다 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0~15km 구간에 조금 더 고통을 감내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0~15km 구간에 더 나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면 그것은 인내심의 결과가 아니라 훈련의 결과이길 바란다.
“저는 특출난 음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국에 숨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요리사분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더 열심히 음식에 대해 소중히 여기면서 살겠습니다.”
겸손과 진정성이 드러나는 우승 소감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회사를 오가며 운전할 때, 밀리의 서재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
책을 다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우승 소감이 빈말이 아니구나.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돌이켜봐도, 요리사로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없다. 그동안 했던 선택들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대단한 요리사가 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외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손을 잘 씻자는 원칙만 있다. 내가 만드는 음식은 최소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어야 하니까.
인생도 요리사라는 직업 경력도 중반기를 지나고 있다. 전반기는 요리를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써왔다. 그만큼 치열했고 쫓기듯 불안하기도 했다. 후반기에도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겠지만 요리사로서 일탈하지 않고 꾸준하게 갈 길을 갔으면 한다. 그 길에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피었으면 좋겠다. 큰 업적을 이루지 않더라도 요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에 한 송이,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또 한 송이, 내 숙제를 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또 한 송이 꽃이 피길 바란다.
먼 훗날에 내가 굳이 기억될 일도 없겠고, 기억되고 싶지도 않지만, 누군가 어떤 계기로 문득 나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 요리하는 사람이었지, 최강록은 요리사였어, 정도가 좋겠다.
2007년부터 이어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생각할 때마다, 최강록 셰프의 직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