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여름의 절정을 달렸다. 훈련 최대 고비라고 생각했던 한 주를 무사히 소화해내서 다행이다. 마침 여름휴가와 겹친 덕분에 덜 지치고, 충분히 회복할 시간도 확보할 수 있었던 게 컸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여름보다 훨씬 수월했다. 작년 여름의 달리기는 유독 고통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올해는 그런대로 달릴 만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 같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4월부터 마일리지가 크게 줄었고, 그 여파로 5분 이상 준비운동을 한 뒤 아주 천천히 출발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 러닝벨트에 소프트플라스크를 매달고 다니며 수시로 물을 마셨다. 달리는 날은 새벽 5시 기상을 원칙으로 삼았다. 천천히 머리와 몸을 깨우고 물을 300ml 이상 나눠 마신 뒤, 5시 30~40분쯤 집을 나섰다. 격일로 달리면서 쉬는 날에는 7시간 이상 충분히 수면을 취했다.
내년 여름은 얼마나 더 더워질지 알 수 없지만, 여름 달리기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볼 수 있었던 2026년 여름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토요일부터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게 느껴진다.
목요일에는 두 번째 MP런을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지난주 첫 MP런과 18km 롱런의 여파 때문인지 워밍업 중 햄스트링에 불길한 느낌이 스쳤는데, 다행히 몸이 풀리면서 곧 사라졌다. 지난주보다 더 편안하게, 조금 더 빠른 페이스인 5’10″으로 MP런 700m 4회를 무난히 소화할 수 있었다. 입추를 하루 앞둔, 올여름 더위의 절정에서 이룬 성과라 성취감이 더 컸다.
입추 다음날 토요일 롱런은 비장한 각오로 나섰다. 앞으로 점점 더 긴 거리를 달리게 되겠지만, 더위 때문에 이날의 롱런이 가장 큰 코비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거리를 달릴 때는 달리기의 끝을 생각하지 않는다. 달리는 상태가 디폴트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크루즈컨트롤 중인 자동차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달리다 보면 그런 상태에 들어설 때가 있다. 보통 10km 이상 달렸을 때, 아직 힘이 50% 이상 남아 있을 때다.
목표한 20km를 다 소화했을 때도 크루즈컨트롤 모드를 유지하고 있었다. 더 달릴 수 있었지만, 다음 주 훈련을 생각하며 멈췄다. 다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고려해 코스를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작업을 소홀히 한 탓에, 영덕천 중간에서 집까지 3km를 걸어서 돌아와야 했다. 카드를 챙기지 않아 갈증을 그대로 견뎌야 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햄스트링은 80~90%쯤 회복한 것 같다. 아직은 700m 단위로 끊어서 달리고 있지만, 5분대 초반 페이스를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어서 매우 기쁘다. 클로드 덕분에 무리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효과적으로 몸을 끌어올리고 있다. 작년보다 적은 마일리지로, 그러나 훨씬 과학적인 훈련 방법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할 수 있는 one more thing은 체중 관리다. 7월 중순 이후 체중 측정을 게을리했는데, 다행히 73kg대 초반 수준은 유지하고 있다. 70kg까지는 무리일 것 같고, 71kg 정도로 감량해서 작년보다 2kg 가벼운 몸으로 JTBC 서울마라톤을 달리고 싶다. 어쩌면 훈련보다 더 중요한 게 체중일지도 모르겠다.
하계 휴가 다섯째 날에는 우연히 발견한 미술 전시회에 다녀왔다. 장소는 구의역 3번 출구 NC이스트폴 2층에 위치한 그라운드시소 이스트. 이번에도 전철로 이동하는 길에 두 작가에 대해 예습을 했다.
조은: 한지와 먹을 중심으로 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를 결합해, 자연과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따뜻하고 생기 있게 그립니다. 실제 풍경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기억과 감정을 담은 이상적인 공간으로 재구성하며, 자신의 작업을 ‘붓으로 쓰는 수필’이자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이기훈: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같은 신화적 원형과 종교적 상징을 빌려 동시대 현실을 탐구하는 환상적 리얼리즘을 선보입니다. 강렬한 색채와 오일파스텔의 거친 질감, 기묘한 인물들을 통해 불안하고 종말론적인 세계를 펼치지만, 그 속에는 생명의 존엄과 희미한 희망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20분 정도 NC이스트폴을 둘러보며 11시까지 시간을 보내다가, 서울 5대 김밥집 중 하나라는 유미분식김밥에서 점심을 먼저 해결했다. 김밥은 꽤 맛있었는데 라면은 별로였다. 김밥을 두 줄 먹을 걸 그랬다.
조은 작가의 그림은 보통 사람의 일상을 담은 풍경화였다. 외국의 풍경을 한지에 수묵채색으로 그려낸 그림들은 누구에게나 예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색감이 너무 좋았다.
얼굴이 그려지지 않은 그림 속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옆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신기했다. 식물로 가득한 그림 속에서 일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평온한 모습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문득 집에 그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일부 작품은 판매 중이며, 이미 판매된 작품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작품은 SEESAW COLLECT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림 속에서 유유히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풀코스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수영까지 배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배움은 JTBC 서울마라톤 이후로 기약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커피와 초코바로 에너지를 충전한 후 이기훈 작가의 전시회 관람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라운드시소 앱을 설치하고 도슨트를 들으며 전시장을 돌았다.
가면을 쓴 어린이들이 노아의 방주를 타고 대홍수를 겪어내는 상상 속 이야기를, 폐벽지에 오일파스텔을 사용해 강렬한 질감으로 그려냈다. 그림 가까이 다가가 눈으로나마 질감을 느껴보려는 시도를 반복했다. 상상력을 자극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시의 끝부분에 두 작가에 대한 영상이 있어서 좋았다. 그림을 보는 내내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어내는 걸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조은 작가의 ‘오늘의 정원’ 전시 도슨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철에서 들었다. 그림과 함께 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흐릿한 그림의 잔상을 떠올리며 작품 설명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화풍과 주제의식이 서로 다른 두 작가의 작품을 시간 간격을 두고 보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대기업 직장인으로서 나의 화풍과 주제의식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나름대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 같은 게 있지 않을까? 남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나만의 화풍을 소중히 가꾸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똑같이 한다면 AI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계휴가가 끝났다. 돌봄센터, 학원 빠지기 싫어하는 아이 덕분에(?) 가족여행 없이 혼자서 휴식과 정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미술 전시회 관람이라는 새로운 취미는 관점과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아직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면 근력』을 읽으며 불안에서 벗어나 잠재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희망을 가져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