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집순이인 딸이 제주도로 여행 가고 싶다고 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린이집 친구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데, 여행이 고팠던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다행히(?) 제주도는 딸의 기대에 부응했다. 제주도에 있는 동안 너무 행복하다며 한달살기 하고 싶다고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곤 했다.
똑버스, 공항리무진버스, 비행기, 렌트카셔틀버스, 렌트카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하는 긴 여정에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집에서 걸어서 5분컷 거리에 있는 식당에 다녀오는 것도 싫어하던 그 아이가 맞나 싶었다.
표선여가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표선여가는 작지만 감각적으로 꾸며놓은 독채다. 침구류가 특히 좋았던 부분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자쿠지가 있지만 일정상 이용해보지 못했다. 주변에 걸어서 갈만한 곳이 없다는 점에서 위치는 조금 아쉽다. 그래도 2.5km 거리에 표선해수욕장이 있다.
표선해수욕장
첫날 저녁식사는 표선해비치에갓더라면에서 문어라면과 해물파전으로 해결했다. 나는 그냥 그랬는데, 아이는 제주도 여행에서 문어라면이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저녁 식사 후 표선해수욕장을 둘러 보았다. 축제 기간이었고, 물이 얕아서 아이가 물놀이 하기에 좋아보였다. 둘째날엔 수영복을 입고 가서 파라솔, 튜브 빌려 해수욕을 즐겼다. 한참 멀리까지 나가도 물이 너무 얕고 뜨겁고 탁해서 아쉬웠다. 다행히 아이는 즐거워 보였다.
산방산
두 번째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는 산방산 근처에 들러 흙돼지 바베큐를 먹고, 후식으로 초콜렛 빙수도 먹었다. 만조여서 용머리해안 탐방를 하지 못한게 아쉬웠지만, 산방산, 송악산 그리고 제주바다가 빚어내는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기억이 있다.
시솔, 월령비치, 선인장자생지
두 번째 숙소는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 위치한 시솔이었다. 도착했을때는 오후 4시가 조금 넘어서, 협재해수욕장에 가서 놀기는 어렵겠구나 싶었는데, 숙소 근처에 수영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네이버 지도에 아무 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곳에 작은 해변이 있었고 숙소와의 거리는 걸어서 2분컷! 파라솔과 튜브를 빌려주는 곳도 있었고 대여료도 각각 2만원, 만원으로 매우 저렴했다. 거기다 친절하기까지 했다. 물도 깨끗하고 시원하고 적당히 깊어서 해수욕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숙소에서 보이는 바다뷰, 숙소옆 선인장자생지 산책로도 너무나 좋았다. 1박 2일 일정인 게 너무 아쉬워서 다음에는 길게 머물러 볼 생각이다.
예비초등이 된 아이는 이제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지금부터 차곡차곡 쌓은 여행의 기억은 아이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평생 간직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9월 초 2주의 안식휴가 기간 중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아내는 내소사 템플스테이를 추천했다. 아내는 2009년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 주었다. 자신을 돌아보기에는 템플스테이처럼 좋은 환경이 없다고 생각해 3박 4일 휴식형으로 신청하고 9월 5일부터 8일까지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새벽 5시 50분에 집을 나서 마을버스-지하철-시외버스-농어촌버스를 이용해 내소사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넘어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에 힘들지도 조바심이 나지도 않았다. 틀린 길로 가더라도 돌아가면 그만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농어촌버스를 타고 내소사 가는 길에 줄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잠시 정차했는데, 몇 분의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도시의 시간과는 확연이 다른 느낌. 물리적인 시간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왜 그렇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을까 싶었다.
아내가 이야기 했던 전나무숲길을 따라서 내소사로 가는 길 은은한 불교음악이 들렸고 내안에 평온함이 퍼져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템플스테이를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고,
서해낙조라는 이름의 방을 배정 받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혼자 왔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이 있는 넓은 방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방에는 베개, 이불,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여서 계획했던 것처럼 자신을 마주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절에서 준비해 주신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공양까지 비는 시간에 근처 지장암과 내소사 경내를 둘러 보았다. 능가산과 내소사의 어울림이 아름다웠다.
휴식형으로 와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차분히 보냈지만, 3박 4일의 일정이어서 틈틈히 체험형으로 오신분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첫재 날: 사찰안내, 타종체험, 저녁예불, 달빛아래 차담과 명상
셋째 날: 관음전 참배 및 숲길 명상, 스님과 다담
넷째 날: 아침예불, 108배 & 명상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1박 2일의 일정으로 오셔서 매일 새로운 분들을 만났는데, 나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혼자 온 나를 이름 모를 보살님과 지묵스님께서 살뜰히 챙겨주셨는데 정말 감사했다. 내소사에 대한 좋은 기억의 팔할은 그분들 덕분이다. 고맙습니다!
내소사가 내려다 보이는 관음전에 올라 문을 활짝 열고 문 밖을 바라보고 앉아 오랫동안 명상을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땐 눈을 감고 관음전에서 느꼈던 평온함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첫째 날 저녁예불을 체험하고 느껴지는 바가 없어 둘째 날부터 예불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날 만큼은 아침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고요한 새벽이어서 그런지 저녁예불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예불을 드리고 이어 108배에 참여했다. 108배 참회문을 들으며 절을 하면서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느낀 바가 많았기에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이라도 매일 108배를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첫째 날 저녁공양부터 마지막 날 아침공양까지 8번의 식사를 했다. 아내의 이야기대로 채소, 야채로만 이루어진 음식은 늘 다음 공양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맛있었다. 부페식이었지만 사람 수 만큼의 음식이 준비되기 때문에 늘 나누어 먹는다는 느낌으로 음식을 가져가야 했다. 합장을 하고 묵언한 채 쌀 한톨도 남김 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사용한 식기는 직접 설거지를 했다. 이 때의 습관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도 식사 후에는 바로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보냈는데,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이유에 대해서 좀처럼 게으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잠깐의 공백도 견디지 못하고 초조함에 어쩔 줄 몰랐던 일상에서는 불가능했을 긴 시간동안 자신과 대화를 나눈 덕분에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하심(下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둘째 날에는 전나무숲길 옆 탐방로를 이용해 직소폭포에 다녀왔다. 절에서 빌려준 옷을 입고 물통 하나 들고 나선 길이었는데 보통 난이도로 표시된 등산로는 보통이 아니었다. 관음봉삼거리에서 직소폭포까지 가는 길은 무난했지만,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 사이 길이 너무 험해서 내려올 때는 원암마을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넘어져 손가락이 까지는 등 힘들게 직소폭포에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대단한 감흥은 없었다. 10분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섰다. 2012년 지리산 종주에서 깨달았던 바가 다시 떠올랐다. 멋진 풍경을 보는 시간은 잠깐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힘들고 고달픈데 여기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을거라고. 장미빛 미래를 기대하며 살기보다 지금에 감사하고 지금을 즐기며 살자고 다짐했다.
이제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 열심히 세상사와 씨름하다 보면 또 힘들고 지칠 순간이 오겠지만 내소사에서 보낸 시간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나에게 위로가 되어 줄 것 같다.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생겨 다행이다. 내소사의 이름 뜻 “이 곳에 다녀가신 이들 모두 새롭게 소생하라”처럼 나를 다시 찾게 해준 내소사를 추억하며 그곳에서 배운대로 하심(下心)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