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한다는 것

흑백요리사 시즌2 결승전에서 우승한 후 최강록 셰프가 남긴 말은,

“저는 특출난 음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국에 숨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요리사분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더 열심히 음식에 대해 소중히 여기면서 살겠습니다.”

겸손과 진정성이 드러나는 우승 소감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회사를 오가며 운전할 때, 밀리의 서재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

책을 다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우승 소감이 빈말이 아니구나.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돌이켜봐도, 요리사로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없다. 그동안 했던 선택들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대단한 요리사가 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외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손을 잘 씻자는 원칙만 있다. 내가 만드는 음식은 최소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어야 하니까.

인생도 요리사라는 직업 경력도 중반기를 지나고 있다. 전반기는 요리를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써왔다. 그만큼 치열했고 쫓기듯 불안하기도 했다. 후반기에도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겠지만 요리사로서 일탈하지 않고 꾸준하게 갈 길을 갔으면 한다. 그 길에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피었으면 좋겠다. 큰 업적을 이루지 않더라도 요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에 한 송이,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또 한 송이, 내 숙제를 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또 한 송이 꽃이 피길 바란다.

먼 훗날에 내가 굳이 기억될 일도 없겠고, 기억되고 싶지도 않지만, 누군가 어떤 계기로 문득 나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 요리하는 사람이었지, 최강록은 요리사였어, 정도가 좋겠다.

2007년부터 이어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생각할 때마다, 최강록 셰프의 직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떠오를 것 같다.

251025 경기도서관 개관

개관일 오후에 경기도서관을 방문해서 한바퀴 둘러보고 아이를 위한 책도 3권 빌렸다.

네모난 책장과 책상이 나란히 서 있는 그런 흔한 도서관이 아니었다. 문제집이나 노트북을 펴놓고 공부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

책을 천천히 탐색하고, 음미하고, 사색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의자들과 공간 구성 하나하나가 그러한 독서 경험을 위해 설계된 듯 보였다.

층별, 공간별 구성도 이름도 독특하다.

https://www.library.kr/ggl/custom/architecture

세계친구 책마을, 아트북 라운지, 인문 라운지, 천권으로, 경기책길, 지구를 지키는 책들, …

1층에서 4층까지 나선형 건물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책과 공간을 탐색했다. 기대와 흥분이 가슴 깊이 차올랐고, 이런 멋진 공간이 집 앞에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책을 3권 밖에 대출하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기계를 통한 대출∙반납이 매우 빠르고 편리해서 좋았다. 반납용 책장에 책을 넣으면 바로 반납처리가 된다. 전용앱은 없지만 카톡으로 대출∙반납 처리 결과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달리는 시간 외에 자유시간이 생긴다면, 나는 아마 이곳을 찾을 것 같다.

231029 아무튼, 달리기

러너이자 직장동료에게 추천 받아 읽게 된 책. 너무 재밌어서 금방 다 읽었다.

달리기에 대한 저자의 경험과 생각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이쯤되면 취미로 달리는 사람들이 달리기에 대하여 느끼는 효용은 거의 비슷하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그것은 주로 육체가 아닌 정신에 대한 것이다.

달리는 이유라면 수십 가지도 댈 수 있지만 그중 가장 뾰족한 건 내 안의 자존감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아침 달리기가 활기 넘치는 바깥세상과의 만남이라면 밤의 뜀박질은 텅 빈 길 위에서 스스로와 나누는 깊은 대화다.

헤밍웨이는 말했다. 진정한 고귀함이란 타인보다 뛰어난 것이 아닌,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라고.

아침에 달릴지, 저녁에 달릴지 고민하는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밤에 고독히 달리면서 불안을 달래는 쪽을 선택했다.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로 인해 복잡해진 마음을 달래는 데 달리기만한 것이 또 있을까? 다이어트 측면에서도 밤에 달리는 것이 좋지만,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밤에 더 달리고 싶어진다.

달리기 수필을 읽다보면 풀 마라톤을 뛰지 않는 사람이 없다. 성장의 욕구를 따르다보면 자연스럽게 풀 마라톤으로 이어지는 듯 하다. 예전에는 풀 마라톤을 뛰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2024년에는 하프 마라톤, 2025년에 풀 마라톤 이렇게 단계적으로 도전하려고 한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정신력으로 완주해내기보다는, 충분한 노력으로 성장해서 완주할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231029 오인환이 말하는 마라토너 이봉주

마라토너 이봉주의 코치였던 오인환 감독이 한국 마라톤의 발전을 바라며 쓴 책이다. 그의 바램과 달리 이봉주 이후의 한국 마라톤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으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마라톤을 즐기는 보통의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으니 아쉬워하기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봉주 선수가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지 몰랐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황영조 선수의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그는 오랜기간 선수로 활동하면서 도쿄 국제 마라톤 대회 우승(대한민국 최고 기록),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얼마 전 우연히 본 2007 서울국제마라톤 대회 중계에서 해설자는 이봉주 선수의 나이가 38세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던 걸로 기억한다. 황영조 선수는 27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재능보다는 성실함으로 오랜기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 못친소에 나와 보여준 순박한 미소처럼 착하고 따뜻한 사람, 그래서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

누군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봉주 선수라고 답할 것이다.

이봉주 선수는 근육긴장이상증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는데 평생에 걸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이 원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의 쾌유를 빈다.

231029 달리기는 제가 하루키보다 낫습니다

달리기 책만 골라 읽는 요즘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도발적인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달리기와 여행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는 중년의 남자가 달리기를 중심으로 쓴 여행기로 위트 있고 글솜씨도 좋으셔서 가볍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모든 여행 계획에 달리기를 넣는다. 해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나도 따라해보기로 했다. 국내 여행을 갈때마다 주변을 달리는 것으로 시작해보려한다. 두 다리와 심장만 튼튼하면 달릴 수 있는 곳은 얼마든지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