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한다는 것

흑백요리사 시즌2 결승전에서 우승한 후 최강록 셰프가 남긴 말은,

“저는 특출난 음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국에 숨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요리사분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더 열심히 음식에 대해 소중히 여기면서 살겠습니다.”

겸손과 진정성이 드러나는 우승 소감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게 되었다.

회사를 오가며 운전할 때, 밀리의 서재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

책을 다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우승 소감이 빈말이 아니구나.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돌이켜봐도, 요리사로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없다. 그동안 했던 선택들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대단한 요리사가 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외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손을 잘 씻자는 원칙만 있다. 내가 만드는 음식은 최소한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어야 하니까.

인생도 요리사라는 직업 경력도 중반기를 지나고 있다. 전반기는 요리를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써왔다. 그만큼 치열했고 쫓기듯 불안하기도 했다. 후반기에도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겠지만 요리사로서 일탈하지 않고 꾸준하게 갈 길을 갔으면 한다. 그 길에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피었으면 좋겠다. 큰 업적을 이루지 않더라도 요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에 한 송이,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또 한 송이, 내 숙제를 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또 한 송이 꽃이 피길 바란다.

먼 훗날에 내가 굳이 기억될 일도 없겠고, 기억되고 싶지도 않지만, 누군가 어떤 계기로 문득 나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 요리하는 사람이었지, 최강록은 요리사였어, 정도가 좋겠다.

2007년부터 이어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생각할 때마다, 최강록 셰프의 직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떠오를 것 같다.

260201 은퇴에 대한 생각

요즘에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은퇴’인 것 같다.

‘언제 은퇴할까? 은퇴 이후엔 무엇을 할까?’

앞으로 5년 정도 더 회사를 다니면서 주식투자를 지속하면 주택담보대출을 다 갚고 세후 월배당 수익도 목표한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자동차가 로봇 분야에서 성공한다면 목표 달성 시점은 더 빨라질 것이다.)

자산에 대해서는 그 이상의 욕심은 없다. 시간 부자로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보람있고 대체로 즐겁지만, 회사를 오가는 3시간은 너무 아깝다.

직책과 업무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잘 맞는 일은 아니다. 시스템의 일부가 아닌 개인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육아휴직을 했던 2020년에는 시간이 한정적이었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5년 후 은퇴를 한다면 중학생이 된 아이는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테고, AI의 도움을 받아서 어지간한 일들은 혼자서 할 수 있을것이다.

5년 후면 40대 후반이 되고 회사 경력은 23년이 된다. 그보다 더 긴 시간을 회사의 직원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젊고 건강할 때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 가족과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

은퇴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해봐야할 것 같다.

오래 전부터 오픈소스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AI 때문에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할 것 같다.

세상에 무엇이라도 기여해야 한다는 부담, 달리 표현하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내려놓고, 한때 푹 빠져있었던 취미에 몰두해서 더 높은 수준에 이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시간 순서로 나열해보면 볼링, 보컬, 피아노, 달리기와 같은 것들이 있다.

취미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이제는 AI가 다 해줘서 직접 하는 맛은 없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을 원 없이 해보고 싶기도 하다.

미래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 오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만족감을 주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하고, 즐겨야 한다.

250906 전세 만기

얼마 전에 꿈을 꾸었다. 부동산 중개인이 나타나서 집을 왜 사지 않고 있냐며 나를 다그쳤다. 주거에 큰 돈을 쓰는 것을 선호하지 않고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서 전세로 살고 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무주택자로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있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을 때 집주인 쪽 부동산에서 전화가 와서 집주인이 들어와 살기로 하였다고 알려주었다. 집주인 가족은 동탄으로 이사를 갔는데 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둘 있어서 다시 들어와 사는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다.

예상치 못하게 12월에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2년 전에는 운이 좋아서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선호하는 집은 도로를 면하고 있지 않아서 소음이 없는 중간동(5407~5011), 5~10층, 판상형인데, 이 조건을 만족하는 전세 매물은 현재 없으며, 매매 매물의 가격은 17.3억원 수준이다.

기존 전세 보증금이 7.7억. 매수할 경우 중개보수, 취득세, 인테리어, 이사까지 고려하면 거의 11억원을 더 투입해야 한다. 다시 전세를 구한다면 시세는 8.5억으로 중개보수, 이사까지 고려하면 8,600만원 정도로 막을 수 있다.

집을 사게 된다면 주식 자산의 상당 부분을 처분하고, 대출을 최대한도로 받아야 한다. 배당금이 줄어들고,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하므로 현금흐름은 상당히 악화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산의 규모가 아닌 현금흐름의 규모를 키우는 투자를 해왔다. 경제적 자유는 현금흐름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치 판단의 문제다. 자산 증식의 측면에서는 집보다 주식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을 갖는 다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우리에게 큰 것인지를 신중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너무나 큰 선택이기에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250815 귀멸의 칼날

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한 달 전부터 보기 시작했고,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개봉을 1주일 앞둔 휴가지에서 지금까지 나온 모든 에피소드를 끝냈다.

만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웃기기도 하지만,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를 보면서 감동하고, 배우고, 느낀것이 참 많았다.

도저히 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압도적인 힘을 가진 상현 혈귀와의 전투에서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이상을 끌어내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는 울면서 봤다. 마지막 순간까지 목숨을 다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완수한 렌고쿠 쿄쥬로는 정말 멋있었다. 렌고쿠 교주로와 아카자의 전투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던 자신의 무력함에 좌절하며 오열하던 카마도 탄지로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자신의 약함이나 무기력함에 몇 번이나 꺾이게 되어도 마음을 불태워라. 이를 악물고 앞을 향하거라. 자네가 발을 멈추고 주저하여도 시간의 흐름은 함께 슬퍼해주지는 않아.

귀멸의 칼날에 과몰입하게 된 이유는 평생 스스로의 능력에 의구심을 가지고 살아온 나 자신에게 있다. 카마로 탄지로와 그의 친구들이 그랬던것처럼 부족한 능력에 좌절하고 그 자리에 머무르는 대신,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장하며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할 일을 끝까지 완수하는 내가 되고 싶다.

250810 숫자

가민 워치는 달리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숫자로 보여준다.

이 숫자들을 향상시키거나 유지하고 싶어서 그다지 달리고 싶지 않은 날에도 러닝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게 된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역량 혹은 리더십, 인품 등을 숫자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꾸준히 노력하는 게 한결 수월해질 것 같다. 본업의 영역에서 후퇴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까.

보상을 바라지 않고 그냥 꾸준히 하는 것. 그것이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