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작가정신

지연이 누나가 재밌게 읽고 추천해준 책이다. 과학도서관 서점에서 책을 바로 사주어서 계획한 다른 책을 제쳐두고 이 책을 먼저 펼쳤다. 사실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 특히 외국소설은 번역한 글을 읽기 싫어서 더욱 안 읽게 된다 – <파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정말 굉장한 이야기”다. 기묘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 위해 일본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그들이 팔고자 하는 동물들과 함께. 태평양에서 화물선은 침몰하고 우여곡절 끝에 파이는 구명보트에 올랐으나 보트에는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벵골 호랑이가 함께 타고 있었다.

그리고 227일을 표류하던 끝에 멕시코 땅에 닿아 이야기는 결국 해피앤딩! 소설가 얀 마텔은 파이 파텔을 만나 대화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이 소설을 썼다. 기적과도 같은 파이 파텔의 이야기가 세상에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은 소설가로서의 얀 마텔의 역량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파이의 심리를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으며 절망속에 보여지는 짧은 재치들이 읽는 내내 나를 피식피식 웃게 만들기도 했다.

최후에는 벵골 호랑이인 리차드 파커와 단둘이 보트에 남게 되는데, 보트위의 기묘한(?) 생태계에서 파이는 현명한 방법으로 호랑이의 우위를 점하는데 성공한다. 채식주의자였던 파이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 처음으로 살아있는 물고기를 죽일 때 눈물을 흘렸던 그가 바다 거북을 난도질 해서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며 – 그가 가진 삶의 의지와 사람의 적응능력에 탄복했다! 나라면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기묘한 공생관계를 이어온 파이와 리차드 파커. 두려움의 대상이였던 파이는 리처드 파커가 있어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그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해주었으며, 낚시로 잡은 동물들을 먹이로 주었고 배설물을 치워주었다. 멕시코 땅에 도달하여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리차드 파커의 뒷 모습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파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캐스트 어웨이>에서 배구공 친구 윌슨을 떠나보내며 슬퍼하던 톰 행크스가 생각났다.

그런데! 방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허구인 것 같다. 지연누나가 실화라고 해서 의심의 여지없이 실화라고 믿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 처럼 씌여진 소설의 구조 조차도 작가가 마련한 하나의 장치였다. 하지만 난 이 소설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실화였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리차드 파커는 어떤 존재일까?

세벌식으로의 과도기 그리고 HHK2

문제가 생겼다. 두벌식을 점점 까먹고 있어 오타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세벌식으로 완전히 전환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한마디로 바보가 된것 같은 기분. 두벌식으로 사용하다가 가끔 입력해야 할 글자가 키보드에 어디에 붙어 있는지 감이 안올 때가 있다. 세벌식으로 연습하다가 발생하는 오타도 두벌식에 해당하는 키를 눌러 발생하는 것이다. 세벌식 연습은 그럭저럭 잘 진행되고있다. 영역을 제한하며 연습한 결과이긴 하지만 솔찬히 200타를 넘기기도 한다. 그렇게 세벌식에 익숙해진 만큼 두벌식은 잊혀져 간다.

또 하나의 과도기(?)는 키보드에 관한 것. HHK2가 눈앞에 아른거려 일찍 퇴근하는 선애누나의 HHK를 빌려서 지금 사용하고 있다. Caps Lock을 이미 Ctrl로 바꿔서 사용하고 있어 그부분은 이미 적응이 되었지만 화살표키나 백스페이스는 조금 헤깔린다. 처음 HHK를 접했을때에 비하면 상당히 적응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제 거의 지르기 일보직전에 도달했다. 마지막 고려사항은 4가지 중에 어떤 모델을 구입할 것인가? 백색각인, 백색무각인, 흑색각인, 흑색무각인. 현재는 백색각인에 가장 마음이 끌리고 있다. 연구실에서 사용중인 키보드가 무각인인데 숫자나 기호를 입력할 때 불편하기 때문. 뽀대보다는 편한게 더욱 중요한 것 같아서 일단 각인에 마음이 가고, 백색을 선택한 이유는 백색과 회색으로 이루어진 클래식한 느낌이 좋기 때문이다.

부디 입사전에 HHK2에 익숙해지고 세벌식 300타를 완성할 수 있기를.

내려놓음

내려놓음
이용규 지음/규장(규장문화사)

모태신앙을 가졌지만 현재는 누가 종교를 물으면 “기독교”라고 이야기 하기 보다 “무교”라고 이야기하는게 더 자연스러울 정도로 나는 이미 오래전에 신앙을 잃어버렸다. 고등학교 다닐때 서울로 전학 온 이후 다녔던 대형교회의 세속적인 모습은 나에게 개신교에 대한염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성가대 앞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예쁜 여학생이 안보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주 오래전의 – 강렬한 느낌으로 살아 있는 – 하나님을 믿음에 의한 기쁨으로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기에 언젠가는 다시 찾아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아직 내 머리는 이성적인 논리로 무장하여 다시 신앙을 되찾기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지만, 하버드 박사학위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몽골로 선교자의 길을 나섰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길래 그와 같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구실에 앉아 책의 첫장을 펴들고 몇 문장을 일고 처음 내가 느낀 것은 “거부감”이였다. 이미 나는 “크리스천”이 아닌 “보통사람”의 시선으로 “크리스천”의 하나님을 섬김을 거북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냥 “보통사람”도 아닌 한국의 개신교를 비난하는 “보통사람”이였다. 마침 연구실에 있던 정한형과의 잠깐의 논쟁(?)을 통해 내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것을 내안에서 인정하자 나는 개신교에 대한 나의 그릇된 시선과 함께 거부감을 걷어내고 책을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특정 종교와 신을 떠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것이나 명예, 인정받기와 같은 정신적인 가치까지도 모든 것을 “내려놓음”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저자는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몽골에서 선교하기까지 자신의 전공을 바꿔가며 힘들게 공부했던 유학생활 중에 겪었던 수 많은 어려움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비로소 하나님안에서 진정한 평화와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슴으로 느꼈던 많은 것들을 지금 머리로 풀어내는 것은 쉽지가 않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뜨거웠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경험했다. 이 책으로 인해 다시 신앙을 되찾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궁금하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미 믿고 있으면서도 세상을 포기하고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것이 두려운걸지도 모르겠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홍세화 지음/한겨레출판

두 개의 거울,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프랑스 사회라는 거울은 나에게 악역을 맡을 것을 요구한다. 그 위에 외유에는 내강이 전제되어야 하듯이, 똘레랑스의 온화함은 앵똘레랑스에 대한 단호한 앵똘레랑스가 전제되어야 한다. 단호하지 않을 때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일상 속에서 무뎌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악역자의 칼날을 일상적으로 벼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당당히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공부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망명자의 신분으로 프랑스에서 가난한 택시운전사로 일하다가 23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홍세화씨는 프랑스 사회라는 거울을 통해 한국사회를 바라보고 비판함으로써 악역자가 되기를 자처하였다.

“그렇게 프랑스 사회가 좋으면 거기서 살아라!” 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 개구리를 잡던 추억이 남아있는 대한민국의 의미를 그들은 모르고 있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일상 속에 무뎌진 우리들은 사회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사회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하고 알기위해 노력하면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라는 무책임한 독설을 뿌려대고 있는 것일까?

그의 이야기는 프랑스 사회에 흐르는 “똘레랑스”와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책에서 만난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겠다.

다니엘은 쉰한 살이 나이로 공장에서 30년 동안 일을 했는데 자주 결근했다는 이유로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동료들은 이 소식을 듣고 곧바로 부당하다고 외치며 중역실로 몰려가 항의 농성을 벌였다. 이 항의 농성으로 중역 두 사람이 아침 9시 부터 저녁 6시까지 감금되었다는 이유로 근로자 46명이 법정의 피고석에 섰다. 동료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들의 “연대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치료받는 중이었다. 30년 동안 일을 시킨 뒤에 쉰한 살 먹은 사람을 내쫓는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추방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삶을 이해해야 된다. 그는 열 살에 아버지를 잃었고 월급 받아 누이들을 공부시켰다. 그는 지금도 혼자 살고 있다. 알코올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 행동, 그것은 노동자끼리의 연대이다. 우리는 자랑스러울 뿐이다.”


이번에는 우리의 사회를 돌아보자.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일으키면 우리는 불평하기 시작한다. 언론은 일제히 그들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왜 파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체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는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만이 노동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노동자이며 지하철 노조의 그들은 같은 처지에 있는 “동지”인 것이다. 따라서 “연대의식”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 사회에서는 버스나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해도 시민들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불평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이 더 공익을 강조하는 사회,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의 공은 public으로 공공의 이익을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추구하는 나라라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공공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화국의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이념과 정책이 공공의 이익과 사회 정의 구현에 있어 올바른 것인가를 열린마음으로 끊임없이 토론해야한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단지 “국민의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것 이외에는 공화국의 특색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빨갱이로 몰아 사회로 부터 격리 시키는 것이 공화국의 이상이란 말인가? “색깔론”, “사상검증”과 같은 단어를 다가오는 대선에서는 만나지 않길 바란다.

그 밖에도 책으로 부터 파생된 여러가지 생각해볼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설익은 생각으로 스스로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아직은 부담스러워 이만줄인다. 책을 읽기전에는 일상 속에 무뎌저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책을 읽음으로써 보이기 시작한다. 열린마음으로 공부하고 생각하고 토론하여 당당한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상식의 통하는 사회”, “정의가 흐르는 사회”가 되는데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알아갈 수록 점점 좌파가 되어가는구나.

최재훈 6집 – Return

최재훈 6집 – Return
최재훈 노래/도레미미디어

주혁이의 메신저 대화명을 보고 최대훈의 새앨범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멜론을 통해 처음 들어보았다. 보컬수련(?)하던 고등학교 시절 경호형과 더불어 흠모하던 위인(?)중에 한명이 최재훈이 였으니 관심이 아니갈수가 없었다.

두 장의 CD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번째 CD는 신곡을 담고 있고 두번째 CD는 라이브 버전의 히트곡을 담고 있다. 나는 두번째 CD 때문에 이 앨범을 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주옥같은 명곡들을 포함하고 있다.

비의랩소디, 널 보낸 후에, 편지,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떠나는 사람을 위해, 외출

내가 즐겨 부르던 노래들. 나는 샤우팅 스타일로 부를 수 있는 락발라드곡을 좋아한다. 발라드라서 분위기 있으면서도 시원하게 불러 제낄 수 있으니깐. 특히 <널 보낸 후에> 라던지 <떠나는 사람을 위해> 같은 곡들은 최상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고음에서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뻗어나가는 그의 목소리는 정말 멋지다! 그리고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