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디지털 노마드

신혼여행으로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이 도시에서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은퇴 이후에나 가능할꺼라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은퇴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가 생겨난 사회적 배경, 원격근무를 바라보는 회사의 입장, 개인의 입장 등 다양한 측면에서 디지털 노마드라는 현상을 조명하고 해석과 전망까지 곁들인 좋은 책이다. 주제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부분의 업무를 원격으로 처리하고 있다. 다른 건물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이메일, 전화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같은 층에서 일하는 동료와 커뮤니케이션 할 때도 이어폰을 꽂은 채 슬랙을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오프라인 협업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기 위해 매일 1~2시간을 길에서 허비한다.

원격근무에 대한 조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완전한 원격근무 기업이 되거나, 완전히 원격근무를 하지 않는 것이 그 중간의 어중간한 상태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온라인에 공유되지 않았을 때 혹은 그 반대일 때 정보의 비대칭으로부터 발생하는 혼란을 겪어 보아서 이 조언이 크게 다가왔다.

아내가 다니는 회사는 자율 출퇴근제에 이어 원격근무제까지 곧 시행한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조금씩 문화가 바뀌고 디지털 노마드가 생겨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가정과 일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소사 템플스테이

9월 초 2주의 안식휴가 기간 중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아내는 내소사 템플스테이를 추천했다. 아내는 2009년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 주었다. 자신을 돌아보기에는 템플스테이처럼 좋은 환경이 없다고 생각해 3박 4일 휴식형으로 신청하고 9월 5일부터 8일까지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새벽 5시 50분에 집을 나서 마을버스-지하철-시외버스-농어촌버스를 이용해 내소사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넘어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에 힘들지도 조바심이 나지도 않았다. 틀린 길로 가더라도 돌아가면 그만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농어촌버스를 타고 내소사 가는 길에 줄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잠시 정차했는데, 몇 분의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도시의 시간과는 확연이 다른 느낌. 물리적인 시간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왜 그렇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을까 싶었다.

아내가 이야기 했던 전나무숲길을 따라서 내소사로 가는 길 은은한 불교음악이 들렸고 내안에 평온함이 퍼져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템플스테이를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고,

서해낙조라는 이름의 방을 배정 받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혼자 왔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이 있는 넓은 방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방에는 베개, 이불,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여서 계획했던 것처럼 자신을 마주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절에서 준비해 주신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공양까지 비는 시간에 근처 지장암과 내소사 경내를 둘러 보았다. 능가산과 내소사의 어울림이 아름다웠다.

휴식형으로 와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차분히 보냈지만, 3박 4일의 일정이어서 틈틈히 체험형으로 오신분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 첫재 날: 사찰안내, 타종체험, 저녁예불, 달빛아래 차담과 명상
  • 셋째 날: 관음전 참배 및 숲길 명상, 스님과 다담
  • 넷째 날: 아침예불, 108배 & 명상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1박 2일의 일정으로 오셔서 매일 새로운 분들을 만났는데, 나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혼자 온 나를 이름 모를 보살님과 지묵스님께서 살뜰히 챙겨주셨는데 정말 감사했다. 내소사에 대한 좋은 기억의 팔할은 그분들 덕분이다. 고맙습니다!

내소사가 내려다 보이는 관음전에 올라 문을 활짝 열고 문 밖을 바라보고 앉아 오랫동안 명상을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땐 눈을 감고 관음전에서 느꼈던 평온함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첫째 날 저녁예불을 체험하고 느껴지는 바가 없어 둘째 날부터 예불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날 만큼은 아침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고요한 새벽이어서 그런지 저녁예불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예불을 드리고 이어 108배에 참여했다. 108배 참회문을 들으며 절을 하면서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느낀 바가 많았기에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이라도 매일 108배를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첫째 날 저녁공양부터 마지막 날 아침공양까지 8번의 식사를 했다. 아내의 이야기대로 채소, 야채로만 이루어진 음식은 늘 다음 공양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맛있었다. 부페식이었지만 사람 수 만큼의 음식이 준비되기 때문에 늘 나누어 먹는다는 느낌으로 음식을 가져가야 했다. 합장을 하고 묵언한 채 쌀 한톨도 남김 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사용한 식기는 직접 설거지를 했다. 이 때의 습관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도 식사 후에는 바로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보냈는데,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이유에 대해서 좀처럼 게으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잠깐의 공백도 견디지 못하고 초조함에 어쩔 줄 몰랐던 일상에서는 불가능했을 긴 시간동안 자신과 대화를 나눈 덕분에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하심(下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둘째 날에는 전나무숲길 옆 탐방로를 이용해 직소폭포에 다녀왔다. 절에서 빌려준 옷을 입고 물통 하나 들고 나선 길이었는데 보통 난이도로 표시된 등산로는 보통이 아니었다. 관음봉삼거리에서 직소폭포까지 가는 길은 무난했지만,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 사이 길이 너무 험해서 내려올 때는 원암마을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넘어져 손가락이 까지는 등 힘들게 직소폭포에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대단한 감흥은 없었다. 10분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섰다. 2012년 지리산 종주에서 깨달았던 바가 다시 떠올랐다. 멋진 풍경을 보는 시간은 잠깐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힘들고 고달픈데 여기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을거라고. 장미빛 미래를 기대하며 살기보다 지금에 감사하고 지금을 즐기며 살자고 다짐했다.

이제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 열심히 세상사와 씨름하다 보면 또 힘들고 지칠 순간이 오겠지만 내소사에서 보낸 시간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나에게 위로가 되어 줄 것 같다.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생겨 다행이다. 내소사의 이름 뜻 “이 곳에 다녀가신 이들 모두 새롭게 소생하라”처럼 나를 다시 찾게 해준 내소사를 추억하며 그곳에서 배운대로 하심(下心)으로 살아갈 것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내소사 템플스테이에서 읽은 책.

내소사에서 묵었던 방과 책의 내용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물건을 줄이는 것 자체는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물건을 줄임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저자의 경우 물건을 5%까지 줄인 덕분에 청소가 간단해져 수시로 청소를 하다보니 자신의 삶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작은 마음의 변화가 삶의 선순환을 이끌어 냈다. 거의 비어있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아담하고 청결한 방에서 산뜻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저자를 상상해 본다.

물건을 늘리는 이유에 대한 분석이 흥미로웠다. 인간은 생존을 위한 메카니즘으로 새로운 자극에 민감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반면, 같은 자극에는 둔감하기 때문에 이미 소유한 물건에 대한 흥미와 만족감은 금세 익숙함으로 바뀌고 종국엔 싫증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보유하고 있는 물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찾게 된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기위한 욕망이 기저에 깔려 있는데,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알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물건을 처음 가졌던 순간의 흥분과 지금의 느낌을 비교하면서, 그리고 집 책장에 놓은 수많은 책들을 떠올리며 저자의 분석에 공감했다.

미니멀리즘의 핵심은 중요하고 소중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 그렇지 않은 것을 삶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건을 줄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정보, 인간관계, 나쁜습관도 더 소중한 것을 위해서 줄여야할 대상이 될 수 있다.

물건을 줄이는 요령과 물건을 줄였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설명한 책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의 자세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여기에 집중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적어도 앞으로 물건을 늘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가진 것에 감사하고 소중한 것에 집중하고 싶다.

7년의 밤

재밌게 읽었다. 약간의 의무감을 가지고 책을 펼쳐보는 편인데 이 책은 달랐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범죄자라도 단편적인 사실만 가지고 판단해선 안 되겠다는 것, 비록 소설이지만 사람이 살아온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부모의 사랑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는 것. 작품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만 최현수를 바라보면서 『인생은 아름다워』의 귀도를 떠올렸다.

소설 속에 소설을 담은 구성,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연달아 서술한 방식은 흥미로웠다.

책 앞 부분에 세령마을 지도가 있다는 걸 뒤 늦게 알게 된 점은 많이 아쉬웠다. 읽으면서 상상해 내기엔 집중력과 상상력이 부족했으므로.

최현수의 상황에 내가 놓였더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자녀를 가져보기 전에는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닐까?

다녀왔습니다

내소사 템플스테이에 갔을 때 읽은 책으로 오대산 월정사 출가학교를 거쳐간 도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출가학교에 들어가지만, 일상에서 찾지 못한 인생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공통의 목적일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23일간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서 24시간 중 2시간을 제외하곤 철저히 통제된 생활속에 묵언하며 삼보일배, 삼천배 등으로 육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구도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저마다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세상에 휩쓸려 자신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 이 책을 통한 출가학교 간접체험을 떠올린다면 겸허히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청춘의 문장들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집으로 은나래 책임님께서 빌려 주셔서 읽게 된 책이다. 한 편의 시와 연결된 청춘의 기억을 덤덤히 고백하는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가 지금의 나보다 어릴 때 이 책을 썼는데, 나는 이런 책을 쓸 만큼의 컨텐츠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단조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생각의 깊이가 얕기 때문일까?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평범한 의대생이었던 아르네스토 게바라를 혁명가 체 게바라로 만든 남미 대륙 여행을 담은 영화. 강 건너 위치한 나환자촌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과 자신의 생일 날 밤 목숨을 걸고 수영으로 강을 건너 나병 환자들에게 다가갔던 모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었다.

이건 영웅담이 아닌, 단지 일치된 꿈과 열망으로 가득차 있던 두 사람의 이야기다. 꿈이 너무 편협했던가? 그래서 경솔하게 끝난 것일까? 우리들의 결정이 너무 경직된 것이었나? 그럴지도. 이번 여행은 내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난,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적어도 이전의 내 모습은 아니다.

8년이 지나 그들은 다시 만났다. 1960년에 그라나다는 연구원 자격으로 초대받아 쿠바로 간다. 이 초대는 그의 오랜 친구인 푸세로부터 받았으며, 푸세는 쿠바 혁명의 몇 안 되는 영향력을 가진 ‘사령관 체 게바라’로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는 콩고와 볼리비아에서 자신의 이상을 위해 싸웠으며, 그곳에서 CIA의 승인 하에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어 1967년 10월에 총살되었다. 알베르토 그라나도는 항상 친구 푸세를 신뢰했으며, 그가 설립한 “산티아고 약물학교”에 머물렀다. 지금은 아내인 델리아, 세 명의 아들들 그리고 손자들과 아바나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