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10 제주도 여행 (feat. 표선여가, 시솔)

8월 10일부터 3박 4일의 일정으로 제주도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집순이인 딸이 제주도로 여행 가고 싶다고 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어린이집 친구의 영향이 아닐까 싶은데, 여행이 고팠던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다행히(?) 제주도는 딸의 기대에 부응했다. 제주도에 있는 동안 너무 행복하다며 한달살기 하고 싶다고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곤 했다.

똑버스, 공항리무진버스, 비행기, 렌트카셔틀버스, 렌트카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하는 긴 여정에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집에서 걸어서 5분컷 거리에 있는 식당에 다녀오는 것도 싫어하던 그 아이가 맞나 싶었다.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표선여가는 작지만 감각적으로 꾸며놓은 독채다. 침구류가 특히 좋았던 부분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자쿠지가 있지만 일정상 이용해보지 못했다. 주변에 걸어서 갈만한 곳이 없다는 점에서 위치는 조금 아쉽다. 그래도 2.5km 거리에 표선해수욕장이 있다.

첫날 저녁식사는 표선해비치에갓더라면에서 문어라면과 해물파전으로 해결했다. 나는 그냥 그랬는데, 아이는 제주도 여행에서 문어라면이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저녁 식사 후 표선해수욕장을 둘러 보았다. 축제 기간이었고, 물이 얕아서 아이가 물놀이 하기에 좋아보였다. 둘째날엔 수영복을 입고 가서 파라솔, 튜브 빌려 해수욕을 즐겼다. 한참 멀리까지 나가도 물이 너무 얕고 뜨겁고 탁해서 아쉬웠다. 다행히 아이는 즐거워 보였다.

두 번째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는 산방산 근처에 들러 흙돼지 바베큐를 먹고, 후식으로 초콜렛 빙수도 먹었다. 만조여서 용머리해안 탐방를 하지 못한게 아쉬웠지만, 산방산, 송악산 그리고 제주바다가 빚어내는 풍경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 숙소는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에 위치한 시솔이었다. 도착했을때는 오후 4시가 조금 넘어서, 협재해수욕장에 가서 놀기는 어렵겠구나 싶었는데, 숙소 근처에 수영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네이버 지도에 아무 표시도 되어 있지 않은 곳에 작은 해변이 있었고 숙소와의 거리는 걸어서 2분컷! 파라솔과 튜브를 빌려주는 곳도 있었고 대여료도 각각 2만원, 만원으로 매우 저렴했다. 거기다 친절하기까지 했다. 물도 깨끗하고 시원하고 적당히 깊어서 해수욕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숙소에서 보이는 바다뷰, 숙소옆 선인장자생지 산책로도 너무나 좋았다. 1박 2일 일정인 게 너무 아쉬워서 다음에는 길게 머물러 볼 생각이다.

예비초등이 된 아이는 이제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지금부터 차곡차곡 쌓은 여행의 기억은 아이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평생 간직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조금 더 자주 새로운 곳으로 가족여행을 떠나야겠다.

여우가 달을 사랑할 때

끝없는 코시국에 집에만 있기에는 너무 답답해서, 날씨도 조금 풀린 것 같아, 월요일에 휴가를 쓰고 글램핑을 다녀왔다.

장소는 가평에 위치한 여우가 달을 사랑할 때.

글램핑은 처음이었는데, 텐트의 탈을 쓴 저렴한 펜션의 느낌이었다.

날씨가 궂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코구멍에 바람을 실컷 넣을 수 있어서 좋았다.

숯불에 구운 토마호크 스테이크와 양꼬치는 대성공. 모두에게 기억에 남을만한 만족스러운 BBQ 타임이었다.

아이도 이제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올해부터는 여행을 자주 다녀야겠다.

아이에게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따뜻한 기억을 많이 남겨주고 싶다.

내소사 템플스테이

9월 초 2주의 안식휴가 기간 중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아내는 내소사 템플스테이를 추천했다. 아내는 2009년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 주었다. 자신을 돌아보기에는 템플스테이처럼 좋은 환경이 없다고 생각해 3박 4일 휴식형으로 신청하고 9월 5일부터 8일까지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새벽 5시 50분에 집을 나서 마을버스-지하철-시외버스-농어촌버스를 이용해 내소사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넘어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에 힘들지도 조바심이 나지도 않았다. 틀린 길로 가더라도 돌아가면 그만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농어촌버스를 타고 내소사 가는 길에 줄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잠시 정차했는데, 몇 분의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도시의 시간과는 확연이 다른 느낌. 물리적인 시간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왜 그렇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을까 싶었다.

아내가 이야기 했던 전나무숲길을 따라서 내소사로 가는 길 은은한 불교음악이 들렸고 내안에 평온함이 퍼져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템플스테이를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고,

서해낙조라는 이름의 방을 배정 받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혼자 왔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이 있는 넓은 방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방에는 베개, 이불,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여서 계획했던 것처럼 자신을 마주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절에서 준비해 주신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공양까지 비는 시간에 근처 지장암과 내소사 경내를 둘러 보았다. 능가산과 내소사의 어울림이 아름다웠다.

휴식형으로 와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차분히 보냈지만, 3박 4일의 일정이어서 틈틈히 체험형으로 오신분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 첫재 날: 사찰안내, 타종체험, 저녁예불, 달빛아래 차담과 명상
  • 셋째 날: 관음전 참배 및 숲길 명상, 스님과 다담
  • 넷째 날: 아침예불, 108배 & 명상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1박 2일의 일정으로 오셔서 매일 새로운 분들을 만났는데, 나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혼자 온 나를 이름 모를 보살님과 지묵스님께서 살뜰히 챙겨주셨는데 정말 감사했다. 내소사에 대한 좋은 기억의 팔할은 그분들 덕분이다. 고맙습니다!

내소사가 내려다 보이는 관음전에 올라 문을 활짝 열고 문 밖을 바라보고 앉아 오랫동안 명상을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땐 눈을 감고 관음전에서 느꼈던 평온함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첫째 날 저녁예불을 체험하고 느껴지는 바가 없어 둘째 날부터 예불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날 만큼은 아침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고요한 새벽이어서 그런지 저녁예불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예불을 드리고 이어 108배에 참여했다. 108배 참회문을 들으며 절을 하면서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느낀 바가 많았기에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이라도 매일 108배를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첫째 날 저녁공양부터 마지막 날 아침공양까지 8번의 식사를 했다. 아내의 이야기대로 채소, 야채로만 이루어진 음식은 늘 다음 공양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맛있었다. 부페식이었지만 사람 수 만큼의 음식이 준비되기 때문에 늘 나누어 먹는다는 느낌으로 음식을 가져가야 했다. 합장을 하고 묵언한 채 쌀 한톨도 남김 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사용한 식기는 직접 설거지를 했다. 이 때의 습관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도 식사 후에는 바로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보냈는데,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이유에 대해서 좀처럼 게으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잠깐의 공백도 견디지 못하고 초조함에 어쩔 줄 몰랐던 일상에서는 불가능했을 긴 시간동안 자신과 대화를 나눈 덕분에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하심(下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둘째 날에는 전나무숲길 옆 탐방로를 이용해 직소폭포에 다녀왔다. 절에서 빌려준 옷을 입고 물통 하나 들고 나선 길이었는데 보통 난이도로 표시된 등산로는 보통이 아니었다. 관음봉삼거리에서 직소폭포까지 가는 길은 무난했지만,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 사이 길이 너무 험해서 내려올 때는 원암마을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넘어져 손가락이 까지는 등 힘들게 직소폭포에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대단한 감흥은 없었다. 10분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섰다. 2012년 지리산 종주에서 깨달았던 바가 다시 떠올랐다. 멋진 풍경을 보는 시간은 잠깐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힘들고 고달픈데 여기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을거라고. 장미빛 미래를 기대하며 살기보다 지금에 감사하고 지금을 즐기며 살자고 다짐했다.

이제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 열심히 세상사와 씨름하다 보면 또 힘들고 지칠 순간이 오겠지만 내소사에서 보낸 시간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나에게 위로가 되어 줄 것 같다.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생겨 다행이다. 내소사의 이름 뜻 “이 곳에 다녀가신 이들 모두 새롭게 소생하라”처럼 나를 다시 찾게 해준 내소사를 추억하며 그곳에서 배운대로 하심(下心)으로 살아갈 것이다.

송지호 해수욕장

여름이 끝나기 전에 바다수영을 하고 싶다는 아내와 함께 송지호 해수욕장에 다녀왔다. 숙소는 올해 새로 지었다는 다인펜션. 네이버 예약 서비스를 통해 편리하게 방을 잡을 수 있었다.

3층 숙소에서 보이는 바다뷰가 참 좋았는데, 바다물 속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불안했다. 튜브는 차에 두고 일단 탐색차 해수욕장으로 가보았다.

모래사장에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 그 누구도 물 속에 들어가지 않아서 안전요원에게 물어봤더니 너울성 파도 때문에 위험해서 입수 금지라는…

너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작전을 바꿔 숙소에서 돗자리와 우산과 간식거리를 가지고 다시 해변을 찾았다. 몇 시간을 해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소리를 듣고 낮잠도 즐겼는데 그래도 마냥 좋았다.

저녁식사라도 만족스러웠으면 하는 바램으로 백도수산 가리비 직매장에 전화했더니 오늘은 가리비가 다 떨어졌다고…

너무 아쉬웠지만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송지호 해변 근처 음식점 중 사람이 많아 보이는 곳에서 아쉬운대로 조개구이를 먹고,

그래도 아쉬워 해변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감자튀김에 생맥주까지 마셨다.

마지막 파티는 숙소에서…

밤새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고 일어나 돌아오는 길에는,

서울 양양 고속도로 내린천 휴게소에 들렀다. 차가 막힐까봐 마음이 바빠서 여유있게 둘러보진 못했지만 뻥 뚤린 풍경과 맑고 시원한 산 바람이 너무 상쾌하고 좋았다.

총 주행거리는 499km. 가는 길도 오는 길도 어느정도 정체 구간이 있었으니 일반적인 BMW 320i M Sport의 장거리 여행 연비는 15-16km/l, 기름을 가득 넣고 달릴 수 있는 거리는 850-900km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어떤 장소에서 여행은 꼭 하나씩 아쉬움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찾아올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 이번 여행은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여느 여행보다 아쉬움을 많이 남겼으니 다음에 꼭 다시 와서 아쉬움을 풀어 보고 싶다.

경리단길에서 보내는 여름휴가 셋째 날

셋째 날 아침엔 해가 비쳤다.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열기를 느낄 수 있어 을밀대 평양냉면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느긋하게 숙소를 나섰다.

테이블이 두 개밖에 없는 메시아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일본가정식을 먹었다.

매일 메뉴가 바뀌고 단일 메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을 줄 알았는데, 데리야끼 덮밥과 고로케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둘 다 데리야키 덮밥을 선택했고 둘 다 만족했다. 맛있었고 과일까지 깔끔한 한 상을 즐겼다. 한 달 동안 일본에 출장가 있던 시절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그 때는 매일 저녁마다 덮밥에 생맥주를 마시는 즐거움이 쏠쏠했다는.

식사 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숙소에 비치된 앨범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평소에 들어보지 않은 음악인데 마음에 들어서 애플뮤직에서 찾아 보관함에 추가했다. 이 음악을 들을 때면 경리단길에서 보내는 여름휴가를 추억하게 되겠지.

카페에서 책을 읽을 요량으로 오후 2시쯤 다시 길을 나섰다. 날씨가 좋아서 동네 풍경이 달라보였다. 더웠지만 습도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서 불쾌하진 않았다.

사장님이 너무 친절하셔서 기분이 좋아지는 버클리커피소셜을 첫째 날에 이어 다시 방문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중에 단골손님, 이웃가게 사장님 등이 찾아왔는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정겨워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커피를 마시며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기 시작할 무렵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사업부에서 업무 관련 전화가 왔고 개발 일정 관련 민감한 대화가 오갔다. 명확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이 문제였고, 지나간 일은 잊고 해결책에 집중하기로 했다. 회사에 계신 분들께 부탁할 수 밖에 없어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휴가기간만이라도 회사일은 잊고 지내고 싶었는데 지나친 기대였을까.

통화 후에도 독서에 집중하지 못하고 숙소에 돌아와서 잠깐 쉬다가 마지막 저녁식사를 위해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했는데 태어나서 국민학교 입학 전까지 살았던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오르 내렸던 기억이 머리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저녁식사를 위해 찾은 곳은 베트남 음식 전문점 띤띤. 베트남에 가본적은 없지만 가게에 들어와 있으니 베트남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 음식과 하노이 맥주의 궁합은 완벽했고 특히 분짜가 정말 맛있었다. 며칠 동안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즐기다보니 싱가포르 여행이 떠올랐는데 굳이 음식 때문이라면 싱가포르에 갈 필요가 있을까 싶을정도로 경리단길에선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홍콩음식 완차이야
  • 일본가정식 메시야
  • 영국가정식 블루밍런던
  • 베트남음식 띤띤
  • 그리스음식 엘그레코스
  • 프랑스음식 장진우식당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나란히 손을 잡고 이태원 해밀턴호텔까지 산책을 다녀왔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걷기에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마무리는 감자전에 막걸리로.

이제는 우리동네 같은 장진우거리에서 야경 한 장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회사에서 여러 번 연락온 것이 옥의 티라 할 수 있겠으나 모처럼 아내와 긴 시간 함께 보내며 잘 쉬었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라는 박민규 작가의 글을 떠올리면서 시간을 보냈고, 앞으로 우리 둘 앞에 놓여질 시간도 언제나 휴일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