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시즌 3

6월 첫째 주에 월화수목금 등원에 성공하면서 육아휴직 시즌 3로 접어들었지만, 그 뒤로도 여러가지 원인으로 어린이집을 꾸준히 보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코로나의 영향이 상당이 컸다. 아이 엄마의 회사 동료가 문제가 되거나, 어린이집 선생님이 문제가 되거나, 전국적으로 상황이 심각해지거나 …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떡을 먹다가 잘 안 씹고 삼켜서 선생님한테 주의를 받은 일이 있었고, 그 후로 어린이집에서 밥을 안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놀지도 않고 구석에서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다고 들었다.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며 우는 아이를 더이상 그대로 볼 수 없어서 한동안 집에서 돌보면서 대안을 생각했다. 다른 어린이집에 보내면 괜찮을까, 놀이학교를 보내볼까 고민하다가, 문득 아이가 처음으로 마주한 세상과 이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왔다.

다행히도 여름휴가를 포함한 긴 방학 끝에 다시 어린이집에 갔을 때 아이는 조금씩 다시 적응해 가기 시작했고, 가을이 된 지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어린이집에 다녀온다.

어린이집 적응에 어려움을 겪거나 코로나 때문에 갑자기 장기간 가정돌봄을 해야하는 시간이 올 때마다 올해 육아휴직 중이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문제는 나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에 나의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시간이 불규칙하여 계획을 세워 규칙적으로 무언가 해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음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자유인으로서 순도 100%의 자유의지로 목표를 향해 달려갈만한 루틴과 의지력이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하고 있다.

코로나가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아마도 꾸준히 자유시간이 주어질 것 같다. 복직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는데, 스스로의 의지로 무언가를 성취하는 기적(?)을 만들어보고 싶다.

‘평생을 책임감이나 타인의 기대를 원동력으로 삼아 살아왔구나’하는 것이 1년 동안 회사를 쉬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안녕 낸니

아이는 말문이 트일 무렵 신기하게도 스스로를 ‘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원래 이름은 ‘서은’인데 ‘ㅅ’을 발음하기 어려워서 스스로 만든 이름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낸니’라는 별명이 귀엽기도 하고 입에 착 붙어서 가족들도 진짜 이름 대신 ‘낸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엔 자신을 ‘낸니’가 아닌 ‘서은’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아이의 엄마도 나도 아이를 ‘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조금은 서글픈 기분을 느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늘 인식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쉽지 않다. 특히 아이와 함께한 순간들은 더욱 더 소중히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다.

육아휴직 시즌 2.5

나의 육아휴직은 3개의 시즌으로 기획되었다.


시즌 1은 아내와 나의 육아휴직이 겹치는 약 2달의 기간으로, 오전에는 내가 오후에는 아내가 집 앞 도서관에서 책 읽고 공부하는 호사를 누렸다. (남들 일할 때) 셋이서 광교호수공원 산책을 다녀오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회사일 걱정 없는 세상은 아름다웠다.

아내의 복직을 보름 앞두고 주방을 접수했다. 식단을 짜고 장을 보고 세끼 식사를 차리는 일이 온전히 나의 몫으로 넘어온 것이다. 아내가 아이를 봐줄 때 미리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아이와 둘이 있을 때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아내의 복직으로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어린이집에 가기전까지 2주, 어린이집 적응기간 3주 이렇게 총 5주로 계획되었던 시즌 2는 코로나19의 습격으로 무한정 길어졌고, 지금도 시즌 2가 끝났다고 봐도 될지 애매한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집 적응에 성공했지만, 지난 주말 어린이집 선생님 한 분이 자가격리를 시작했다고 하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하는 시즌 2가 길어진 덕분에 아이와 애착이 많이 형성되었다. 이 세상 모든 아빠가 딱 한 달만 아이와 둘이서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하면 좋지 않을까? 아이와의 애착은 아이가 어릴 때가 아니면 얻기 어려운 값진 선물이다.

힘들기도 했지만 미리 각오를 단단히 해서인지 걱정했던 수준만큼은 아니었다. 육아와 가사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내 시간이 아이에게 100% 점유되어 있다보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학창시절 시험기간에 꼭 안 하던 게임이 하고 싶은 것과 비슷하게, 평소에 잘 안 하던 공부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는 멈춰 있으니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밥을 차리고 설거지할 때마다 아이가 사정 봐주지 않고 놀아 달라고 보채서 식기세척기를 구입했는데, 천군 마마를 얻은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거나 맞벌이 하는 집이라면 무조건 구입을 추천하고 싶다.


아직까진 한 번도 월화수목금 어린이집 등원에 성공한 적이 없지만, 그 날이 온다면 시즌 3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어린이집 등원과 하원사이 6시간이 비는데, 집안일과 밥 챙겨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빠듯하게 4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시간은 운동과 책 읽기, 투자/전공/영어 공부로 살뜰히 채워나갈 생각이다. 하지만 자기계발에 매몰되어 육아휴직의 첫 번째 목적인 가족을 잊어선 안 되겠다.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모두에게 너무나 좋았던 육아휴직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어린이집 적응기 #5

어린이집 적응기는 이제 막을 내려도 좋을 것 같다.

5/15, 5/18에는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5월 초 아내의 직장동료가 홍대를 방문한 여파로 우리가족 모두 5/15~16에 자가격리되었기 때문이다.

키즈노트

집을 나설 때 아슬아슬한 날도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점점 당연한 일과로 여기게 되는 것 같다. 아이가 스스로 “어린이집에 가야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해 선생님을 만났을 때 아이의 얼굴에 띈 미소를 매일 볼 수 있어 마음이 좋다.

요즘 하원할 때는 항상 “어린이집에 또 가고 싶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했던 첫째 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스스로 성장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가 울고불고 하는 순간에 매몰되어 있으면 볼 수 없는 것.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한 발 물러서서 멀리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이집 적응과정을 함께 하며 배웠다.

어린이집 적응기 #4

황금연휴가 끝나고 5/4, 5/6에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부부는 어쩌면 맞벌이를 계속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시 아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건강히 먹이고 재밌게 놀아주려고 노력했다.

키즈노트

5/7에는 힘들게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하원할 때 선생님께서 연휴기간에 아이가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이제 크게 우는 일이 없어졌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서 작은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집을 나서는 것은 여전히 긴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점점 수월해지고 있고, 어린이집 주차장에 도착하면 스스로 걸어 들어가 선생님과 인사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린이집에 있을 때 한 번도 울지 않는다는 것.

이번주 개근을 하면 어느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내가 일찍 출근하고 나 혼자서 등원시킬 수 있게 되면 어린이집 적응기는 끝을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주에는 가능할까?

선생님께 듣기로 아이는 다른반 친구들과 섞이는 공간에서 유독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낯설음을 두려움으로 받아 들이는 아이가 나를 닮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같은반 친구들이 전에는 많이 울었는데, 최근에 많이 줄었다고 한다. 다 같이 우는 분위기도 아이에겐 어린이집을 피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을 것 같다.

광교호수공원 돗자리 뷰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광교호수공원에서 노는 것을 엄청 좋아해서, 아침마다 어린이집이 아닌 호수공원에 가자고 조른다. 그래서 이번주부터는 어린이집 하원 길에 매일 호수공원에 들른다. 아이가 좋아하는 돗자리와 비눗방울 장난감과 채소까까와 함께.

어린이집 적응 과정을 돌아보면서 느낀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와 함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것이다. 밤마다 코야는 싫다며 버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왜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그렇게 싫어할까?’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아이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2. 아이는 스스로 성장한다. 믿고 기다려주지 못했다. 부모 입장에서 조급함만 내세웠다. 아이가 세상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부침을 겪을 때마다 아이는 스스로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3. 선생님, 친구들과 교감하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고, 다양한 장난감, 놀이를 경험할 수 있는 등등 어린이집을 다니면 좋은점도 많지만, 36개월이 되기 전까진 부모가 직접 돌보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와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아이를 보면서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