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아웃 인생

광교푸른숲도서관 개관 후 처음으로 구경가서 빌려온 4권의 책 중 하나. 도서관에 비치된 모든 책이 무려 새책이었다.

나보다 10년 정도 앞서 세상을 살아가고 계시는 인생 선배님의 산문집. 나와 다른 세대지만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아 호기심을 자아내는 세대의 이야기.

3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 야구
  • 가수
  • 금연

어쩌면 우리 인생의 굴곡들과 가장 비슷한 야구팀이 삼미로 시작해 지금은 넥센으로 불리는 히어로즈가 아닐까? 삼성과 롯데처럼 든든한 자금력을 갖추지 못한, 그야말로 타고난 엄친아거나 뛰어나게 잘 난 사람이 아닌 이상 삶은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 아닐까?
솔직히 얘기해 보자. 걱정거리는 끝이 없고, 이런저런 작은 일에 상처받고, 열등감에 속상하고, 문득문득 쓸쓸해지는 그런 일상이 바로 우리들의 삶 아닌가? 남들은 대충 다들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독 나만 늘 바보처럼 뒤처진다고 느껴지는 그게 바로 우리 삶 아닌가? 그래서 나도 히어로즈를 보면 가끔씩 내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금의 넥센은 꽤 강팀으로 인식되지만 시작은 녹녹치 않았나보다. (지금도) 녹녹치 않은 팀 사정이 평범한 사람의 벅찬 삶과 견주어 볼 수 있을만큼.

프로야구 개막부터 최근까지 역사가 요약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삼미의 풍운아 장명부의 이야기, 허구연 해설위원이 청보 핀토스의 감독을 맡은 이야기 등등

들국화의 몇몇 노래들을 좋아해서 한 때는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곤 했는데, 들국화의 역사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다. 전인권과 최성원의 불화로 1집이 그들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앨범으론 남았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포함해서. 요즘에는 역사적인 앨범이라는 들국화 1집을 벅스에서 통째로 다운받아 듣는 중이다.

소설보다 산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소 심심할 지언정 진짜 이야기기 때문이다. 평소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두어야 누구와도 두런두런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서툰 엄마

출산을 앞둔 아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어 보았다.

가보지 않은 길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특히 내가 아닌 존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육아는 더 두렵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두려움 대신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좋은 아빠, 엄마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아이에게 행복을 줄 수 있고, 함께 성장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아이와 감정을 많이 주고받기, 뭐든지 스스로 할 수 있게 기회주기, 아이가 가진 힘을 믿고 늘 옆에서 지켜보기 등등 저자 옥복녀 선생님이 이 책에 남긴 가르침에 따라 지혜롭게 육아를 해낸다면 아이와 우리가 함께하는 여정이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산후조리원을 거쳐 집에 돌아오기 전에 저자가 쓴 다른 책 『가짜부모 진짜부모』도 읽어보아야겠다.

내가 엄마가 되어도 될까

4월 말 태어날 태어날 딸을 기다리는 심정은 설레임 반, 두려움 반. 설레임은 즐기면 그만이지만 두려움에는 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출산, 육아 경험을 담은 이 책을 아내와 함께 읽게 되었다.

글솜씨 좋고 사려깊은 저자의 글은 읽는 재미도 좋았고,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특히 마음의 그릇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마음에 그릇 하나 품고 산다. 사랑이 채워지고 줄줄 새어나가기도 하는 그릇. 사랑이 차오르면 힘이 나고 선의가 저절로 생기지만 어떤 계기로 마음이 비어가면 불평하고 계산하며 모든 일에 서러워지기 시작한다.

아내가 가진 마음의 그릇이 바닥을 보이지 않고 늘 충만한 사랑으로 넘실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출산과 모유수유를 제외한 모든 것을 남편도 할 수 있고 해야한다는 것, 아내를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핑퐁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10년 간격을 두고 두 번 읽은 후 회사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된 박민규 작가의 또 하나의 소설 『핑퐁』. 이 작품을 읽으면서 박민규 작가가 주로 고민하는 주제는 마이너리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류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는 마이너리티의 삶을 다루면서도 밝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 작품은 대체로 어둡다.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문체가 재미를 주는 것은 여전하지만 희망보다는 체념을 느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과 다수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의 간극. 수십억 인구 중에서 한 명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 어쩌면 철학적인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라 읽고 난 후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다만 내 삶의 여러 측면 중 주류를 벗어난 부분에 대해서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다들 그렇게 존재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주류의 결정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가볍게 읽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고민을 남긴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기도를 멈춘 것은 가족과 함께 말레이시아를 다녀와서였다. 비행기를 타고, 난생처음 구름 이상의 세계로 올라간 것이었다. 보이지 않겠구나. 그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육십억과, 오만구천이백사명과, 천구백삼십사명과, 육백삼십육명과, 마흔한명에 둘러싸인 중학생 같은 게 보일 리 없다는 사실을. 아니 실은 육십억의 인류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26쪽)

자신의 라켓을 가진다는 건 말이다, 말하자면 비로소 자신의 의견을 가진 것이란 얘기야. (46쪽)

소외가 아니고 배제야. 벌판을 향해 걸어가며 나는 중얼거렸다. 뭐가? 모아이가 물었다. 따를 당한다는 것 말이야… 소외가 아니라 배제되는 거라고. 아이들한테? 아니, 인류로부터. 살아간다는 건, 실은 인류로부터 계속 배제되어가는 거야. 깎여나가는 피부와도 같은 것이지. 그게 무서워 다들 인류에게 잘 보이려 하는 거야. 다수인 척, 인류의 피부를 파고들어가는 거지. (58~59쪽)

아무튼 얘야. 혜성 같은 건 오지 않는단다. 그냥 계속… 이렇게 사는 거란다. 알겠니? (94쪽)

야, 못… 그러니까 따를 당하는 거야 이 바보야, 널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아냐? 아, 아니. 말하자면 저건… 무슨 이미테이션이 아닌가, 그런 느낌이었어. 이미테이션? 그러니까 진짜 너는 어딘가 다른 곳에 살고, 눈앞의 이건 짝퉁이다… 뭐 그런 느낌이지. (102쪽)

적응이 안돼요. 다들 결국엔 자기 할 말만 하는 거잖아요. 얘길 들어보면 누구도 틀렸다고 할 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아무도 틀리지 않았는데 틀린 곳으로 가는 걸까요. 내가 이렇게 사는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무엇보다 그걸 용서할 수 없어요. 6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자신이 왜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거잖아요. 그걸 용서할 수가 없어요. (117쪽)

이윽고 세끄라탱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얘야, 세계는 언제나 듀스포인트란다. 이 세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그것을 지켜봤단다. 그리고 이루 셀 수 없는 많은 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쳤어. 어느쪽이든 이 지루한 시합의 결과를 이끌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아직도 결판은 나지 않았단다. 이 세계는 그래서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곳이야. (117~118쪽)

즉 너와 나 같은 인간들은 그냥 빈 공간이란 얘기지. 그렇지 않을까? 즉 보이지 않는 거야. 멀리서 보면 그저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공간… 그럼에도 우린 이렇게 존재해. 그럼 우린 뭘까? (171쪽)

너와 나는 세계가 < 깜박>한 인간들이야. (219쪽)

바보 빅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이 짜집기 되어 있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던,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그려진 예쁜 동화. 저자는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타인의 평판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빅터와 로라를 통해 이야기한다.

열등감이 컸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읽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의심하지 않고 노력했던 순간들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반대로 한계를 미리 정해놓고 노력하지 않았던 시간들 때문에 여기까지 밖에 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 기준조차도 남들이 정해준 것이었다.

지금은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나만이 알 수 있는 길. 그 길을 쉼없이 걸으면서, 누군가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