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로 물든 사회에서 개인주의자임을 당당히 밝힌 문유석 판사의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한국사회에서 조금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개인주의자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저에게 이 책은, 손석희 앵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많은 공감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저도 개인주의자 문유석 판사의 커밍아웃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고백하자면,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단체 회식, 주말을 끼고 진행되는 단체 행사를 저는 정말 싫어합니다.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개인 시간은 오로지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야심도 없고 남들에게 별 관심이 없고, 주변에서 큰 기대를 받는 건 부담스럽고, 싫은 일을 하고 싶지 않고 호감 가지 않는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 내 일을 간섭 없이 내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해내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내가 매력을 느끼는 소수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고, 심지어 가끔은 가족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갖길 원한다.
개인주의자임을 고백하고, 한국사회의 전체주의적 문화를 비판하면서 시작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책은 다양한 영역에서 문유석 판사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판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생각 뿐만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생각들도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에피소드 중 인천지법 조정전담부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자는 조정전담부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실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능력은 다양하고, 그 능력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의 차이가 학벌의 차이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조정위원단을 구축할 때 영화 ‘머니볼’의 이론을 따라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존 조정위원회의 200명 가까운 조정위원들의 수년간의 사건 처리 통계를 모두 가져와 살펴보았고,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성과가 좋은 위원들을 추려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사건을 맡겼던 법관들의 평가를 청취하여 성공률은 높더라도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거나 무리수를 두는 타입의 위원들은 배제하였습니다. 그렇게 추려진 후보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어보며 신뢰감, 적극성 우뮤를 평가하고 마지막으로 수습기간을 두어 성과가 낮은 위원은 배제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구성한 조정위원단의 구성원은 법무사, 퇴직한 교장선생님, 은퇴한 사업가, 변호사, 퇴직 법원 공무원 등으로 다양했다고 합니다.
2년째 인천지법의 조정전담부의 전체 조정 성공률은 54퍼센트로 전국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조정위원을 선발할 때, 학벌이나 과거의 지위같은 조정업무능력과 연관이 없는 요소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실무에 필요한 능력을 기준으로 선발했기에 이러한 결과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연차가 쌓여갈수록 함께 일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할수록 하드스킬(공학 측면)보다 소프트스킬(인문학 측면)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됩니다. 문유석 판사가 진단한 훌륭한 조정위원들의 공통점은 소프트스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조정위원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신뢰감이다.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고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해준다는 신뢰를 양쪽에 심어준다는 점이다.
인상이나 말투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뛰어난 위원들 모두가 예외 없이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다. 먼저, 분쟁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다. 당사자들이 겉으로 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과 속으로 가장 아쉬워하고 있는 것은 다를 때가 많다.
결국 심리학이다. 사람의 마음을 잘 파악하는 능력인 것이다.
원동력은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다. 뛰어난 조정위원들은 공통적으로 법원을 찾는 당사자들의 고통을 자기 손으로 직접 해결해준다는 것에 자부심과 만족감이 컸다.
저자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이런 책을 쓸 수 있을정도의 폭 넓은 경험과 깊이 있는 성찰 그리고 글솜씨를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대로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과 함께 좀 더 깊이 있고 풍부한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읽고 생각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소통하면서 배우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겠습니다. 언젠가는 책으로 엮을 수 있을정도의 큰 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