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가면서 독서량을 급격히 늘린 덕분에, 올해는 겨우겨우 21권을 읽어냈다.
책은 우리안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카프카
아쉽게도 올해에는 기존의 생각을 깨주는 책을 읽진 못하였지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책을 선택한다면 <나는왜이일을하는가?>이다. 가장 공감이 많이 되었고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열정의배신>이다. 이 두 책은 일을 할 때 어떤 마음가짐과 전략으로 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휴직기간인 내년에는 100권쯤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굳이 100권 읽기를 목표라고 하지 않는 까닭은 100권을 읽었다는 실적보다, ‘책을 통해 얼마나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읽기에 버거운, 나에게 도끼 같은 책들을 만나보려 한다.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이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놓고 기다리는 사이에 독일계 회사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되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김봉진 대표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고, 그의 강연을 담은 영상도 유튜브에서 몇 개 찾아보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땐 우아한 형제들이라는 회사보다 김봉진 대표라는 사람에 집중했다.
한양대 경영대학 홍성태 교수가 김봉진 대표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비지니스 세계에서 학문으로서의 경영학은 뒤처지기 십상이라, 홍성태 교수는 젊고 뛰어난 경영자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좇아다니던 중 김봉진 대표를 만났고, 그의 깊은 생각과 경영 철학이 경영학 교육의 자료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을 집필했다.
디자이너였던 그가 대학원 시절 만든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서 토이 프로젝트로 시작한 ‘배달의 민족’으로 계획 없던 창업을 했을 때 그는 준비된 경영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학 교수를 매료시킬만큼, 경영에 대한 본인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게 된 배경에는 ‘꾸준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교세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쓴 <왜 일하는가>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일이란 나 자신을 완성해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련의 도구다. 그 일을 통해서 꾸준히 반복적으로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나를 수련해 나가야 한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 중에서
‘꾸준함’의 가치를 깨달은 그는 네이버 오픈캐스트에 매일 컨텐츠 8개씩 올리는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755일 동안 지속하였고, 페이스북에 짧은 독서 후기를 남기는 일을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꾸준함’은 임기응변으로 순간적인 기질을 발휘하여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을 만들어 인정받는 것을 즐겼던 디자이너 김봉진을 훌륭한 경영자로 만들어 주었다. DH가 인수한 것은 ‘배달의 민족’, ‘우아한 형제들’이 아닌 ‘김봉진’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스스로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예의라고 믿어요.
저는 살면서 좀 더 쓸모 있는 사람, 남들에게 좀 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 스스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고 있거든요. 열정은 그런 것 아닐까요? 그냥 주어진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좋아지는 거요.
냉정하게 말해, 기업은 자기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로는 인간을 정말 행복하게 만들 수는 없다고 봐요. 그래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일하는 과정의 즐거움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화가 중요하다고 반복적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배민이 하는 서비스 자체 때문에 다음 세대들이 더 행복해지고 좋아질 거라고 보진 않거든요. 하지만 다음 세대에 도움이 되는 문화를 남길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만든 문화 덕분에 세상이 좋아질 수도 있는거죠. 그래서 그 문화를 잘 만들어나가는 게 이 회사에서 제가 가진 꿈이에요.
그가 지향하는 태도와 그의 목표가 나의 것과 다르지 않기에 책을 읽으며 많이 공감하였고, 그의 성공적인 여정은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기존과 다른 문화가 인정 받고 주변에 영향을 주려면 1등을 해야한다는 그의 통찰에 무릎을 딱 쳤다.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겠지만 리더의 의지와 실력이 매우 중요하다. ‘꾸준함’을 항상 곁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이 책과 영상에서 던지는 주제인 ‘Why’는 2019년 나에게 가장 큰 화두였다.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강한 열망과 그에 걸맞는 노력을 왜 나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는지, 회사에서 구성원들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오랫동안 가져온 질문들에 답을 찾는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Why’가 모든 일의 출발점이 되어야 함을 이해하고 난 후, 내 삶의 ‘Why’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나에게도 ‘Why’는 존재했다. 깊은 수면 아래 있어서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을 뿐. 그것은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좋은 소프트웨어를 혼자서 만들어 낼 수는 없으므로,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일들은 엄청나게 많다. 그 길고 지루하고 힘든 과정을 이겨내기 위해서 ‘Why’를 항상 마음속에 지녀야 한다.
워낙 인기가 많은 책이라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예약할 기회만 엿보다가 회사동료에게 빌려 읽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 곳에 머물러 살지 못했던, 어른이 되어서도 한 곳에 정착하기 보다는 짧은 주기의 여행 또는 긴 주기의 이주를 반복했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단순한 여행기라기 보다는 여행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다룬 책이라고 보아야 맞을 것 같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여행에 대한 작가의 경험, 생각을 접하며 나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각해보았다. 여행에서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적은 없었다. 일상을 벗어나서 그냥 쉬는 것,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갇는 것, 여기까지가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여행을 하는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할 수록 아이는 부쩍 성장함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할 여행이 때로는 힘겨운 일상을 살아갈 때 잠시 떠올리면 힘이 될 추억을 남기고, 아이에겐 더 넓은 세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는 마중물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