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회고

올해는 종종 회고라는 것을 해보려고 한다. 지나간 시간을 기록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오늘을 살기 위해서…

2017년 2월은 오롯이 회사에 바쳤고 솔직히 힘들었다. 2016년 12월부터 PL(파트리더) 역할을 담당하면서 부담을 많이 느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고민했다. 소프트웨어 조직의 리더 혹은 관리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오래전부터 고민했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감안해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서버 개발이었지만, 작년에 하던 앱 개발 프로젝트의 연장선 상에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동기부여를 끌어내기 어려운 여러 프로젝트의 개발을 맡아 홀로 진행하다보니 PL이 된 이후 개발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어떤 날은 2~3개 프로젝트 개발을 진행하면서 Android-Java, AWS-Python을 오갔다. 시간은 늘 부족하게 느껴졌고 마음의 여유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구성원들의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누구나 PL을 맡아도 즣을만큼 성숙한 mindset과 attitude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며 어려운 시기를 잘 해쳐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프로젝트가 정리되는 3월 말, 4월 초부터는 구성원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성장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요즘에는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공원 벤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는 상상을 종종 한다. 3월에는 여유가 허락되면 좋겠다. 아무튼 따뜻한 봄이 다가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의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1년만에 방통대 복학

2015년 2학기에 방통대 경제학과 2학년으로 편입하여 고작 한 학기를 공부하고, 2016년 1년을 쉬었다. 한 학기만 쉴 수도 있었지만, 2학기 강의를 두 번 연속으로 수강하기에는 커리큘럼이 꼬여서 어쩔 수 없이 1년을 휴학했다.

회사 일도 바쁘고 전공 관련해 공부할 것도 많아서 경제학을 계속 공부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취미가 공부다’라고 생각하니 의외로 답은 쉽게 나왔다.

커리큘럼상 순서는 미시경제론 다음이 거시경제론인데, 2학기부터 시작하다보니 거시경제론을 먼저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거시경제론이 재미있어서 미시경제론은 어떤 것일까 굉장히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졸업이 목표가 아니라 본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흥미로워 보이는 3과목만 선택했다.

피곤한 가운데 수강신청을 마치고나니 의욕이 샘솟는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공부가 삶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이 묻는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문형렬님이 유력한 대선 주자 문재인 전 대표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가족, 어린시절의 추억에 대한 질문부터 대한민국이 마주한 현안에 대한 질문까지, 대통령 후보로서 문재인이라는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폭넓게 담겨있다.

그 어느때보다 야권에 좋은 대권 후보들이 많이 있지만, 문재인 전 대표만큼 준비되어 있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는 후보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욕이 부족하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세간의 평가도 기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준비되어 있으며,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가 새시대를 여는 첫 번째 주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장미빛 미래를 눈 앞에 두고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젊은 신경외과의사의 이야기. 2015년 3월 세상을 떠난 폴 칼라니티의 나이는 36세로 지금의 내 나이와 같다. 그는 평생 인간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문학, 철학, 과학, 생물학을 탐구했으며, 이 모든 학문에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공부한 후 신경외과 의사가 되었다. 그는 먼 미래에는 외과 의사를 그만두고 작가가 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무수히 많은 죽음과 싸웠고, 죽음을 이길 수는 없었지만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웠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그가 폐암을 선고받은 후에도 변함이 없어, 그는 다시 수술실로 돌아간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I can’t go on. I’ll go on.)

그는 고통을 참으며 수술실에서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7년의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는데 필요한 기준을 모두 충족시켰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책의 마지막에는 폴의 아내 루시가 쓴 글이 담겨 있다. 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져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폴이 보여준 용기를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불치병에 걸렸어도 폴은 온전히 살아 있었다. 육체적으로 무너지고 있었음에도, 활기차고 솔직하고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내게 가장 그리운 폴은 연애하기 시작했을 때의 팔팔하고 눈부셨던 그 남자가 아니다. 뭔가에 집중하는 아름다운 남자였던 투병 말기의 폴, 이 책을 쓴 폴, 병약하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았던 그 남자가 그립다.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이어 이 책을 읽으며, 삶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것을 이룰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어떤 책에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상실의 시대의 작가로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이 책은 오랫동안 읽기목록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리기라는 주제는 나에게 특별하다. 20대 초반 100kg이 넘는 체중으로 건강까지 악화되었을때,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300m부터 달리기를 시작했고, 달리는 거리는 점점 늘어나 한때는 하프마라톤까지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바쁜 업무로 하프마라톤 출전은 좌절되었으나 10km 단축 마라톤 코스는 여러 번 뛰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읽었던 책이, 독일 외무부 장관을 지냈던 요쉬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였는데, 이제는 달리기를 생각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단순히 달리기 경험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다. 달리기를 축으로 인생을 회고한 책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30대 초반 전업 작가의 길로 접어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가기 위해, 작가에게 필요한 집중력과 지속력을 얻기 위해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풀코스를 완주하여 이 책이 출간될 당시까지 26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기 위해 끝없이 정진하는 모습은 존경심을 자아냈다. 달리는 행위가 무익하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했다는 사실은 남는다는 생각과 자신의 묘비명의 문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로 쓰고 싶다는 소망은 인생을 살아가는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언젠가부터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고 있는 자신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꾸준히 자기계발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을뿐 조금만 피곤하면 내일로 미루는 일이 다반사다. 노력해도 결과가 금방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조급함에 노력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추운 겨울이지만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려 한다. 달리기는 즐거울 때도 있지만 보통은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을 이겨내고 목표한 만큼을 뛰어내는 것으로부터 삶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으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적인 마라토너인 세코 도시히코에게 달리고 싶지 않은 날, 쉬고 싶은 날이 있었냐고 물었고, 세코 도시히코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늘 그렇습니다!” 편안한 상태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 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느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생동감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