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김영란법”의 주인공, “김영란” 전 대법관이 지은 책으로 “정혜신의 사람 공부”와 마찬가지로 공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담고 있다. 평생 지식과 상관없는 책 읽기를 해왔고 그것이 쓸모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돌아보니 유년시절 사고관의 틀을 형성해 주었고, 법관으로 일할때도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을 법한 마음속 이야기를 꾸밈없이 솔직히 들려주셔서 책을 읽는 내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문학작품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문학작품으로부터 삶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사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 어떤 장르의 책보다 문학작품이 삶에 더 큰 울림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올해 초 출판사 창비는 “창작과 비평” 50주년을 기념하여 지식인 5명을 초청하여 “공부의 시대”라는 특별강연을 열었고, 강연 내용을 정리하여 5권의 단행본으로 펴냈다. 이 책은 그 중 하나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치유하고 계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전국에서 수많은 상담 전문가들이 좋은 뜻으로 팽목항에 모였지만 사실상 유가족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들은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유가족을 돕고자 했으나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유가족에게 상처를 안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오랜시간 공부했지만, 실제 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짜 공부는 무엇일까?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다. 그걸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그게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그게 사람 공부에 대한 제 결론입니다.

모든 분야에서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을 대하는 분야일수록 세상에 하나뿐인 우주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오랜시간 자신이 배운 것에 대한 교조적인 믿음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을 치유해야 한다는 업의 본질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어느분야에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고 치유하는 일은 하는 사람은 자기점검과 자기성찰을 숙명이나 업보처럼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선입견이나 편견, 내 가치관과 세계관, 내 언행이 혹여 상처입은 사람에게 상처를 더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자격증의 권위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도 유가족을 돕는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혼란을 겪는 등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에요. 어떤 경우에도 어떤 인간에게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전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걸 알아야 하고, 그렇지 못한 나 자신도 비난하지 않아야 해요. 그러면서도 내가 왜 그런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없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고 시작한 일이 도움도 못 줄 뿐더러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경험으로 남게 됩니다.

누군가를 돕고자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해야만 스스로 지치지 않고 타인을 돕는 노력을 이어나갈 수 있고 실제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결국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공부는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일일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어떻게 의욕을 불태우는가

일본의 3대 기업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교세라 창립자이자 명예회장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이다. 2010년에 그가 쓴 책 “왜 일하는가”를 읽고 예전 블로그에 독후감을 남긴 바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직원들의 의욕을 일으키는 방법에 대한 이나모리 가즈오의 생각을 담았고, 두 번째는 젊은 경영자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세이와주쿠’라는 경영연구회에서 있었던 ‘경영 문답’을 정리하였다. 두 주제가 서로 다른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으나 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르지 않았다. 경영 문답 내용 중 기본 줄기를 벗어나는 지엽적인 내용은 건너뛰면서 읽었다.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어떤 비밀이 있을까? 늘 궁금했다. 오랫동안 그 비밀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명쾌한 답을 얻진 못하였고 그저 하루하루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작은 노력을 반복할 뿐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개인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직원들의 열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직원들의 의욕을 일으키는 방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직원들을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2. 마음 깊이 경영자에게 이끌리게 하며
  3. 업무의 의의를 설명하고
  4. 비전을 높게 세우고
  5. 대의명분이 분명한 미션을 확립하며
  6. 철학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7. 경영자 자신의 마음을 갈고 닦는다.

비전과 미션을 제시하는 것은 경영자에게 기대되는 기본적인 역할이라 특별할게 없었지만, 나는 마음 깊이 경영자에게 이끌리게 해야 한다는 항목에 주목했다.

‘흉금을 털어놓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관계를 만들어간다.’ 이것이 직원들의 의욕에 불을 지피는 첫걸음입니다.
사장인 당신에게 매료되어 어디까지라도 따라와주는 사람을 만들고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경영자의 의무입니다.

나는 이 책에서 사장, 경영자를 리더로, 직원을 후배, 동료로 바꿔서 읽었다.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회사 안에서 작은 프로젝트를를 이끄는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는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대충 만든 것과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은 처음에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를 드러낸다.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 리더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구성원들의 의욕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동기를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경력이 쌓여 프로젝트를 리딩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열정을 불러일으킬 대상이 나 자신에서 프로젝트 구성원으로 달라졌고, 늘 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 책은 나름의 답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열쇠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실력면에서 뿐만아니라 인성면에서도 함께 일하고 싶은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나 자신이 아닌 구성원들을 위하는 마음을 한시라도 잊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하는 모든일의 흥망성쇠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에 달려 있다. 큰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람은 평생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풀꽃도 꽃이다

평생을 문학이라는 도구로 사회문제에 당당히 맞서고 계시는 조정래 선생님께서는 교육 문제의 심각성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2016년 7월 “풀꽃도 꽃이다”를 출간하셨고, 현재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한국의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당위에 동의하고, 고통받는 학생들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 접한 학생들의 현재 상황와 사교육 시장의 병폐는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심각했다. 반대로 혁신학교, 대안학교의 모습은 꿈 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그러나 소설을 쓰기 이전에 몇 년에 걸쳐 현장을 방문하고 관련자를 인터뷰하는 등 철저히 자료를 준비하시는 조정래 선생님의 노력을 알고 있기에 이 책의 이야기는 현실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이 소설은 2권의 분량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 이야기들 속으로 들어가보면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어른들의 이기심이다. 학생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교육이 어른들의 욕심을 채우는 방향으로 흘러가니 학생들은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 불행을 찾는 어리석음이 숨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성심껏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요 성공적인 삶이다. 거기에 남을 위하는 마음과 실천이 따른다면 훌륭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소설 내용 중 학교에서 왕따와 학교폭력을 당하던 딸이 혁신학교로 전학가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딸이 전학가서 텃세를 당할까봐 걱정하는 장면이 있다. 혁신학교는 체육대회에서 아이들이 장애아의 휠체어를 밀며 함께 뛰니 늘 장애아가 1등 하는 곳이라고 딸이 아버지를 안심시키자, 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렇담 거긴 천국이게?”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우리 아이들이 경쟁에 내몰려 인간성까지 잃어가는 사이에,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어야 할 장면이 현실에서 마주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부디 이 소설이 마중물이 되어 한국 교육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길 바란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복잡하고 어려운 지식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 하여 설명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그 어려운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이렇게 넓은 영역을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간결함과 명쾌함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반드시 곱씹어 보아야 할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쓰여졌다는 측면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오래전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다양한 책을 읽어 왔고, 작년부터 방통대 경제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쌓은 지식 덕분에 이 책의 내용은 낯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던 지식들을 빠르게 정리해볼 수 있어서 유익했고, 몇몇 주제들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쉬운 예제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에서는 세계를 단순화하여 이해하기 위해 이분법을 사용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로 대표되는 양쪽의 입장을 균형있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보수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쪽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율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만한 정치제도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욕먹고 비난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정당이 아니라, 어떤 정당이 자신을 대변하는지 모르고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엉뚱한 생각인지 몰라도, 전 국민이 이 책을 읽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노동자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원인에 대해서 명쾌하면서도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 기업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상을 비판 없이 수용한다면 우리는 수준 이하의 보수 정당에게 정권을 맡기게 될 것이고 우리의 삶은 더 어려워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