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노먼 베쑨

닥터 노먼 베쑨
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실천문학사

2006년의 마지막 몇시간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보내고 있다. 덕분에 충분히 가치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자신한다. <체게바라 평전>에 이어 찾게 된 실천문학사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인 이 책의 원제는 <생명의 칼, 정의의 칼>이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그가 일생동안 보여준 인류애는 모든 사람들이 본받을만하다. 일신의 안영과 영달을 포기하고 국제적인 인류애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노먼 베쑨은 체게바라와 너무나 닮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까지도.

디트로이트의 평범한 외과의사였던 노먼 베쑨은 폐결핵을 앓게 되고 요양원에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던 중, 그 당시에는 무모하다고 생각되던 기흉수술에 대한 연구결과를 접하게 되고 수술로 폐결핵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닥터 노먼 베쑨 그 자신은 그렇게 수술을 통해 결핵으로 부터 완치가 되었고, 후에는 흉부외과 의사로 명망을 얻게 된다.
 
다시 삶을 얻게 된 노먼 베쑨은 수 많은 사람들이 결핵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한계에 괴로워한다. 그가 생각하는 결핵의 근본적인 원인은 “가난”이였기에 환자차트에 병명을 써넣을 때 “폐결핵”이라고 써넣어야 할지 또는 “경제적 빈곤”이라고 써넣어야 할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그러한 고민 끝에 그는 “무상의료”를 주장하게 되고 결국은 어떤 연설에서 “공산주의자”임을 밝힌다.

노먼 베쑨은 자신의 이념을 실천에 옮긴 사람이다. 파시즘과 나치즘에 대항하여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였고, 중국의 항일운동에 참가하여 부상병들을 치료함으로써 전시의료분야의 개척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안위는 생각지 않고 부상병을 찾아 전선으로 이동했으며, 쉼 없이 몇 일동안 수십건의 수술을 해냈다. 그에 대한 중국인민의 무한한 존경과 사랑은 당연한 것이였다. 결국 그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부상병을 돌보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노먼 베쑨의 개인의 생애뿐만 아니라, 1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국제정세 그리고 자신들의 더러운 명분을 세우기 위해 제국주의자들이 악용했던 반공의 속성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중국인민들과 닥터 노먼 베쑨이 보여준 순수한 공산주의가 실현된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 것이 유토피아적일지라도. 2006년의 마지막 날 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아꼈던 또 한명의 위인을 만나게 되어 나는 기뻤다.

이주의 TTB 리뷰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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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으로 옮긴지 두달, 실버회원이 되었을까 궁금해서 오랜만에 알라딘에 로그인했는데, 5만원의 적립금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나 했는데 확인해보니 이주의 TTB 리뷰에 당선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일주일만에 알게 되었으니 공돈을 찾은 기분. TTB 우수 리뷰어 으뜸상 수상에 이어 이번 적립금까지 벌써 알라딘이 나에게 10만원을 선물해주었으니, 다시는 변절치 않으리라.

이주의 TTB 리뷰를 알고 있었지만 글 솜씨가 부족한 나로서는 당선작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만 했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좀 더 내공이 쌓이면 그때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의 독후감을 작성할 당시에 책에서 느낀바가 강렬했는지 생각보다 격정적(?)으로, 생각보다 많은 분량의 글을 쓰게 되었던 것 같다. 여느 진부한 수상소감 처럼 더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더 좋은 리뷰를 많이 올리라는 채찍질로 받아 들이자.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한겨레출판

극우의 헤게모니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열린 마음으로 읽어 주었으면 하는 한겨레 출판의 <21세기에는 …>시리즈. 올해의 인터뷰 특강은 책에서 만난 배우 오지혜가 사회를 맡아서 더욱 정겨웠다.

올해 인터뷰 특강의 화두는 “거짓말”이다. 총 8명의 연사가 각자의 분야에서 마주칠 수 있는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다. 한홍구, 박노자님은 한국사의 거짓말을 논하고, 김동광님은 황우석 사태를 가지고 과학에 대한 거짓말을 이야기한다.

이번 강연에서 특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 특히나 여성 연사로 부터 – 고정관념으로 부터 벗어나 색다른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혜신님의 강연에서는 사람에 대한 “모호함”을 참고 이리저리 열어 놓고 생각하자고 주장한다. 지난 여름방학 소개팅에서 만났던 아가씨가 만날 사람이 카이스트 학생이라고 하여 이상한(?) 사람이 나올까봐 다소(?) 걱정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제로 내가 느끼기에도 다른 집단에 비해 특출난(?) 사람들의 비율이 많기는 하지만,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몇 가지 행동패턴으로 부터 사람을 단순하게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일까? 평범하고 그렇지 않음에 기준은 무엇일까?

마지막 프라풀 비드와이의 강연에서는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가 제시 했던 두 가지 거짓말의 첫번째는 신비주의적인 인도의 이미지에 대한 것이며 두번째는 떠오르는 경제강국으로서의 인도에 대한 것이다. 카스트제도로 인한 인도사회의 부조리와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이제야 비로소 책으로 출판된 인터뷰 특강을 모두 읽었다. 나에게 <21세기에는 …> 시리즈는 진보적인 사람들의 소신을 통해 세상에 눈을 뜰 수 있게 해준 정말 고마운 책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보수적인 사람들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주었으면 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열린마음으로 소통함으로써 좀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시공사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동생의 책꽂이에서 얇은 소설 한권을 꺼내들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인줄도 모르고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그냥 책을 펼쳤다. 책의 서문에서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기에 더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삶을 담은 진짜 이야기니까.

책을 끝까지 읽기 전에는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의 사랑이 어쨌든 “불륜”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들의 감정이 아무리 절절하고 진실되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보수적이라서 그런지 아름다운 사랑만 보이는 것은 아니였다.

끝까지 읽고 난 후 난 극도로 절제된(?) 사랑에 감동받았다. 한눈에 서로를 알아본 그들의 만남은 겨우 4일 밖에 지속될 수 없었으나 그들의 감정은 너무나 확실했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남편인 리처드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킨케이드를 따라나서지 않았고 킨케이드는 그녀의 생각을 존중했다.

아주 옅은 짝사랑의 감정에도 힘들어하는 나로서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고백할 정도로 사랑하는 여자를 존중하기 위해 죽을때까지 홀로 힘들어했던 킨케이드의 사랑에 감동받았다. 누군가를 마음에 두면 항상 이기적인 나의 어리석음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작가인 로버트 제임스 윌러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듯 하다. 언젠가 따뜻한 소설 한편이 생각나면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프란체스카에게 사랑고백을 할 때 킨케이드가 했던 주옥같은 말을 소개하므로써 이 책으로 부터 받은 감동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나마 여기에 옮겨보고자 한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파이 이야기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작가정신

지연이 누나가 재밌게 읽고 추천해준 책이다. 과학도서관 서점에서 책을 바로 사주어서 계획한 다른 책을 제쳐두고 이 책을 먼저 펼쳤다. 사실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 특히 외국소설은 번역한 글을 읽기 싫어서 더욱 안 읽게 된다 – <파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정말 굉장한 이야기”다. 기묘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 위해 일본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그들이 팔고자 하는 동물들과 함께. 태평양에서 화물선은 침몰하고 우여곡절 끝에 파이는 구명보트에 올랐으나 보트에는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벵골 호랑이가 함께 타고 있었다.

그리고 227일을 표류하던 끝에 멕시코 땅에 닿아 이야기는 결국 해피앤딩! 소설가 얀 마텔은 파이 파텔을 만나 대화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이 소설을 썼다. 기적과도 같은 파이 파텔의 이야기가 세상에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은 소설가로서의 얀 마텔의 역량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파이의 심리를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으며 절망속에 보여지는 짧은 재치들이 읽는 내내 나를 피식피식 웃게 만들기도 했다.

최후에는 벵골 호랑이인 리차드 파커와 단둘이 보트에 남게 되는데, 보트위의 기묘한(?) 생태계에서 파이는 현명한 방법으로 호랑이의 우위를 점하는데 성공한다. 채식주의자였던 파이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 처음으로 살아있는 물고기를 죽일 때 눈물을 흘렸던 그가 바다 거북을 난도질 해서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며 – 그가 가진 삶의 의지와 사람의 적응능력에 탄복했다! 나라면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기묘한 공생관계를 이어온 파이와 리차드 파커. 두려움의 대상이였던 파이는 리처드 파커가 있어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그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해주었으며, 낚시로 잡은 동물들을 먹이로 주었고 배설물을 치워주었다. 멕시코 땅에 도달하여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리차드 파커의 뒷 모습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파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캐스트 어웨이>에서 배구공 친구 윌슨을 떠나보내며 슬퍼하던 톰 행크스가 생각났다.

그런데! 방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허구인 것 같다. 지연누나가 실화라고 해서 의심의 여지없이 실화라고 믿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 처럼 씌여진 소설의 구조 조차도 작가가 마련한 하나의 장치였다. 하지만 난 이 소설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실화였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리차드 파커는 어떤 존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