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아주 오래전에 이슈가 된 적이 있었기에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홍세화님이 누군지 왜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체 그저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예상만 했을 뿐 읽어본 적은 없었다. 최근 읽었던 책에서 홍세화님을 처음 만났고 그의 생각을 접하면서 그의 생각과 경험을 더 알고 싶었기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단지 한국사회에 반항하였다. 남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하는 증오의 사회를 반항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망명자였다. 대한민국을 빼고 모든 나라를 방문할 수 있는 이방인. 그는 우연찮게 회사의 일로 파리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는 남민전 사건이 터져 동료들이 모진고초를 겪을 때 그는 크나큰 마음의 짐을 들쳐업고 망명자로 살아가야 했다.
살아가기 위해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그가 바라본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만남을 통해 느낀점이 잘 드러나 있다. 그가 프랑스에서 우리나라에 들여오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서 소개한 것은 ‘똘레랑스’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프랑스말 사전이 밝힌 똘레랑스의 첫번째 뜻은 다음과 같다.
즉 나와 다른 남을 관용 허용하고 관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어두운 근대사는 우리 사회를 증오의 사회로 만들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사회 구성원이 그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군사독재시절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이였다. 군사적인 억재력으로 그들의 이념을 강제했던 것 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그 자신이 한때 좌익세력에 몸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똘레랑스’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게 된다. 나와 다른 남을 포용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내 생각을 강제하고 있지 않은지 항상 경계해야한다. 격동의(?) 70년대에 대학생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양심의 소리에 이끌려 우리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고자 행동했던 선배님들께서 겪었던 모진 고초 덕분에 내가 이러한 글을 마음놓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