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화

회사 볼링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오랫동안 쉬었던 볼링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대학원 시절에는 SIGBOWL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일주일에 한번씩 볼링을 치러갔었던 기억이 나네요.

볼링을 처음 배웠을때는 중학생이었고, 방학때는 하루에 10게임 이상 쳤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또랑(?)에 빠지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도 버거웠는데, 나중에는 150점 정도는 여유있게 넘기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신들린 어느날에는 259점이라는 엄청난 점수를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볼링신발은 부모님이 사주셔서 가지고 있었지만, 볼링공은 한번도 새것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경제력을 갖춘 어른이 된 지금은 처음으로 내 공을 가져볼 욕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아서 볼링화부터 준비했습니다.

볼링화

적당한 가격에 무난한 디자인과 기능성을 갖춘 상품을 찾기 힘들더군요. 오랜 검색 끝에 김남주 프로 볼링샵에서 MBS300 TW-1800이라는 모델을 찾았습니다.

이번주 일요일 아침 탄천종합운동장 볼링장에서 오랜만에 볼링을 즐겨볼 생각입니다. 동생의 공을 빌려가야겠지만 오랜만에 볼링을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즐거운 마음이 듭니다.

16Pounds

우연히 볼링 게임 광고를 보고 도전해보았다.

http://16pounds.gamelamp.com/

그 이름은 바로 16Pounds. 네이밍 센스 꼬라지 하고는 …
나 같으면 게임이름을 300이나 퍼팩트로 했을 것 같은데 …
가장 무거운 공의 무게로 게임 이름을 정하다니 …

별 기대 안하고 도전해보았는데, 실제 볼링 게임과 상당히 비슷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 볼링에서 사용하는 초구 및 스페어 스팟을 적용한 경우, 실제와 다름 없이 공이 굴러간다. 게다가 레인의 오일상태까지 적용하여 훅이나 커브를 사용한 경우 정교한 컨트롤을 요구한다. 한가지 아쉬움은 게임 진행이 조금만 더 빨랐으면 하는 것이다.

레벨 3을 앞두고 있는 지금 실제 볼링칠때 점수의 90%정도(130~150점)까지 점수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같이 하는 사람 있음 2:2로 해도 재밌을 듯.

SIGBOWL

SIGBOWL 사람들
SIGBOWL이라는 이름으로 연구실 사람들을 모아 볼링을 시작한지 꽤 오랜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우리연구실 사람들만 모아서 시작했으나, 정한형의 부산과학고 동기분들과 연구실의 신입생들이 합류하여 어제는 11명의 회원을 모아 볼링장을 찾았다.

우리는 주로 대덕볼링장을 찾는데, 매주 꾸준히 찾았기에 얼굴 도장도 찍었겠다 싶어 볼링장의 상주 클럽 등록을 추진해보기로 했다. 상주클럽 등록문서를 받아가지고 팀이름을 정하려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모았으나 기존의 SIGBOWL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누가 보면 “그릇” 을 공부하는 모임인 줄 알지도 모르겠으나! 클럽 등록이 성사되면서 나의 직함이 General Chair에서 “회장”으로 바뀌었다. 아무튼 다음주 부터는 대덕볼링장의 당당한 상주클럽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의 게임비 할인혜택을 누리며 …

재호형팀
선애누나팀
윤경누나팀
늘 그렇듯 첫 게임은 연습게임, 두번째 게임부터 흥미진진한 내기다. 팀을 나누어 내기를 하다보면 숨은 중재자(?)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항상 비슷하게 점수가 흘러가 큰 재미와 감동(?)을 유발한다. 어제는 3팀으로 나누어 게임을 했는데, 2등을 하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4명 팀은 당해낼 수가 없다.

매주 목요일의 볼링 이벤트가 연구실 생활의 큰 즐거움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모두에게 즐거울 수 있는 이런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고마운 정전

어제는 SIGBOWL 회원들이 모여 대덕볼링장을 찾았다. 총 8명이 참여했고, 첫번째 게임은 연습게임이였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스페어 없이 스트라익 두번에 111점을 기록하고 뒤에서 몇번째를 차지했다. General chair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졌던 게임이였다 ^^;

두번째 게임은 음료수내기! 선애누나와 윤경누나가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번씩 팀원을 선택하였는데, 첫게임의 삽질에도 불구하고 선애누나가 나를 중용하셨다. 결론적으로 윤경누나팀은 부산과학고 3인방으로 구성되었고 우리는 특별히 묶을만한 키워드가 생각나지 않지만 … 젊은 팀이라고 해두자.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이기기 힘든 게임이 될 것 같았다.

게임은 시작되었고, 나는 첫게임의 삽질은 완전히 잊은체, WBC에서 구원투수로 올라와 땅만 바라보고 공을 던졌다는 박찬호가 된 심정으로 침착하게  공을 굴렸다. 그러나!!! SIGBOWL 랭킹 2위에 빛나는 정한형이 팀나누기에서 마지막으로 선택된 울분을 토해내듯 초장부터 터키를 때려내며 달리기 시작하셨다. 우리팀은 적잖이 당황했다! 정한형의 all cover 행진이 끝나던 7프레임부터 점수차를 좁히기 시작해서 8프레임이 되었을 때 우리가 10~20점 정도 지고있었는데 …

그 순간 !!!
눈 앞이 깜깜해졌다 …

볼링장 전체 전기가 나가면서, 모든 기록이 날라갔고 …
당연히 음료수 내기는 무효가 되었고 …
볼링장이 복구가 안되었기에 연구실로 돌아왔다 …

질뻔한 음료수 내기가 취소된 것에 기쁘면서도 한편 …
200점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페이스였기에 아쉬웠다 …


모두가 재밌게 볼링을 치고 있다가 돌아오게 되어서 너무나 아쉬웠고, 그 아쉬움을 보드게임으로 달랬다 ^^;;

볼링

내가 볼링을 처음 접한 것은 경상남도 창원에 살 때, 정확히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서울에서만 살다가 먼 타지로 이사가서 정붙일 곳이 없었던 어머니께서 취미 생활로 볼링을 시작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아버지를 거쳐 나까지 볼링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어머니는 언젠가 볼링 대회에서 구사하신 멋진 폼으로 마산 MBC 저널의 표지모델로 발탁되신 적도 있다.

마산 MBC 저널을 장식하신 어머니

대충 자세를 배우고 처음 볼링을 쳤을 때, 나는 어떻게 공이 끝까지 꼬랑(?)에 안빠지고 굴러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100점을 넘기까지 상당히 오래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볼링에 영 소질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100점을 무난히 넘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부터 볼링이 너무 재밌었다. 방학이 되면 월 5만원을 내고 볼링장에 가서 지칠 때 까지 미친듯이 쳤다. 보통 하루에 12~15게임 정도 쳤던 것 같다. 수십만번(?)의 스텝을 밟았기에 자동차의 운전을 평생 잊어버리지 않듯 나는 볼링을 그렇게 내안에 받아 들이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온 후 몇 달만에 혹은 일년만에 볼링을 쳐도 전혀 어색하지가 았았으니까 …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마음먹고 집중하면 200점을 칠 수 있을꺼라고 자신하던 때, 경상남도 도청배 청소년 볼링대회에 출전하였다. 유니폼도 없이 라운드 티에 청바지를 입고 등장한 나는 심판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다른 학생들은 다 학교 볼링부 소속 준 선수들이였다. 소심한 나는 안그래도 심판의 꾸지람으로 인해 주눅이 들었었는데, 다른 애들은 다 선수이고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볼링을 쳐서 기가 많이 죽어있었다.

재밌었던 건 정식 대회라서 파일라인을 밟으면 ‘삐’ 소리가 나며 0점 처리되었고, 평소에 나는 파울라인을 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연습투구에서 당당하게 ‘삐’ 소리를 내버렸다. 그 후로 약간 신경써서 실전에서는 파울을 하지 않았지만 나랑 같은 레인에서 쳤던 부산상고 누나(?)는 간간히 ‘삐’ 소리를 울려 웃음을 참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3게임 평균으로 순위를 가르는 게임이였는데, 나는 먼 타지였던 김해에 친구와 둘이 가서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문제는 레인 상태가 거시기 하여 나의 훅이 전혀 먹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 사용하는 스파트로 첫게임을 치다가 망쳐버렸다. 변화가 필요했다. 나는 훅이 먹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직구와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대각선으로 레인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겨우 평균 150점으로 경기를 마쳤고, 어이없게도 그 점수가 남자 중등부 1위였다. 그렇게 나는 홀로 청바지를 입고 고독한 승부를 결정지었다. 한동안 볼링선수로 나가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당시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더라면 어떻게 됬을지 모르겠으나, 그랬더라면 지금쯤 어느 작은 볼링장에서 코치를 하며 아줌마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용호 볼링장으로 옮겼다. 여름 방학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강좌를 들었고 그 때 강사가 그당시 프로볼러 랭킹 1위였고 퍼팩트를 30회 이상 기록한 배대권 프로였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1주일 동안 폼연습만 다시했다. 2주를 그렇게 기본기를 철저히 다시 배우고 전열을 가다듬은 나는 그 방학에 지금도 깨지 못하고 있는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 날은 한마디로 신들린 날이였다. 첫게임은 190점대를 기록했고 둘째게임에 사고를 치게되었다. 터키로 시작하여 4프레임 스페어, 5프레임 스트라이크, 6프레임에 스페어, 그 이후로 스트라이크 아웃! 점수는 259점이였다. 그 다음게임도 230점을 넘었고 그 날은 총 10게임을 쳤는데 5게임에서 200점을 넘었다. 내평생 259점을 넘어볼 수 있을까?

카이스트에 와서 생각지도 못하게 볼링클럽이 만들어졌고, 일주일에 한번씩 꾸준히 볼링을 즐기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너무 점수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기본기를 다져서 볼링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배부른 욕심이 있다면 나도 마이볼을 가지고 싶다. 어머니와 손크기가 비슷하다고 하여 늘 어머니 공을 물려받았는데, 지금 쓰고 있는 공도 회전력이 좋지 않다고 하여 버려진 것을 내가 업어온 것이다. 정말 내 손에 맞는 꽤나 괜찮은 공을 하나 가지고 싶다. 공이 손에 정확히 맞으면, 회전력이 2배는 상승할 것 같다. 올해 하나 질러버릴까!

크게 힘이 들지도 않고 사람들과의 친목에도 좋은 볼링 …
볼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마누라를 만난다면 아마도 평생 즐기는 레포츠가 될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