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시즌 2.5

나의 육아휴직은 3개의 시즌으로 기획되었다.


시즌 1은 아내와 나의 육아휴직이 겹치는 약 2달의 기간으로, 오전에는 내가 오후에는 아내가 집 앞 도서관에서 책 읽고 공부하는 호사를 누렸다. (남들 일할 때) 셋이서 광교호수공원 산책을 다녀오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회사일 걱정 없는 세상은 아름다웠다.

아내의 복직을 보름 앞두고 주방을 접수했다. 식단을 짜고 장을 보고 세끼 식사를 차리는 일이 온전히 나의 몫으로 넘어온 것이다. 아내가 아이를 봐줄 때 미리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아이와 둘이 있을 때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아내의 복직으로 시즌 2가 시작되었다. 어린이집에 가기전까지 2주, 어린이집 적응기간 3주 이렇게 총 5주로 계획되었던 시즌 2는 코로나19의 습격으로 무한정 길어졌고, 지금도 시즌 2가 끝났다고 봐도 될지 애매한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집 적응에 성공했지만, 지난 주말 어린이집 선생님 한 분이 자가격리를 시작했다고 하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하는 시즌 2가 길어진 덕분에 아이와 애착이 많이 형성되었다. 이 세상 모든 아빠가 딱 한 달만 아이와 둘이서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하면 좋지 않을까? 아이와의 애착은 아이가 어릴 때가 아니면 얻기 어려운 값진 선물이다.

힘들기도 했지만 미리 각오를 단단히 해서인지 걱정했던 수준만큼은 아니었다. 육아와 가사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내 시간이 아이에게 100% 점유되어 있다보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학창시절 시험기간에 꼭 안 하던 게임이 하고 싶은 것과 비슷하게, 평소에 잘 안 하던 공부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는 멈춰 있으니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밥을 차리고 설거지할 때마다 아이가 사정 봐주지 않고 놀아 달라고 보채서 식기세척기를 구입했는데, 천군 마마를 얻은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거나 맞벌이 하는 집이라면 무조건 구입을 추천하고 싶다.


아직까진 한 번도 월화수목금 어린이집 등원에 성공한 적이 없지만, 그 날이 온다면 시즌 3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어린이집 등원과 하원사이 6시간이 비는데, 집안일과 밥 챙겨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빠듯하게 4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시간은 운동과 책 읽기, 투자/전공/영어 공부로 살뜰히 채워나갈 생각이다. 하지만 자기계발에 매몰되어 육아휴직의 첫 번째 목적인 가족을 잊어선 안 되겠다.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모두에게 너무나 좋았던 육아휴직이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

어린이집 적응기 #5

어린이집 적응기는 이제 막을 내려도 좋을 것 같다.

5/15, 5/18에는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5월 초 아내의 직장동료가 홍대를 방문한 여파로 우리가족 모두 5/15~16에 자가격리되었기 때문이다.

키즈노트

집을 나설 때 아슬아슬한 날도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점점 당연한 일과로 여기게 되는 것 같다. 아이가 스스로 “어린이집에 가야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해 선생님을 만났을 때 아이의 얼굴에 띈 미소를 매일 볼 수 있어 마음이 좋다.

요즘 하원할 때는 항상 “어린이집에 또 가고 싶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했던 첫째 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스스로 성장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가 울고불고 하는 순간에 매몰되어 있으면 볼 수 없는 것.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한 발 물러서서 멀리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이집 적응과정을 함께 하며 배웠다.

어린이집 적응기 #4

황금연휴가 끝나고 5/4, 5/6에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부부는 어쩌면 맞벌이를 계속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시 아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건강히 먹이고 재밌게 놀아주려고 노력했다.

키즈노트

5/7에는 힘들게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하원할 때 선생님께서 연휴기간에 아이가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이제 크게 우는 일이 없어졌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서 작은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집을 나서는 것은 여전히 긴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점점 수월해지고 있고, 어린이집 주차장에 도착하면 스스로 걸어 들어가 선생님과 인사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린이집에 있을 때 한 번도 울지 않는다는 것.

이번주 개근을 하면 어느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내가 일찍 출근하고 나 혼자서 등원시킬 수 있게 되면 어린이집 적응기는 끝을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주에는 가능할까?

선생님께 듣기로 아이는 다른반 친구들과 섞이는 공간에서 유독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낯설음을 두려움으로 받아 들이는 아이가 나를 닮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같은반 친구들이 전에는 많이 울었는데, 최근에 많이 줄었다고 한다. 다 같이 우는 분위기도 아이에겐 어린이집을 피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을 것 같다.

광교호수공원 돗자리 뷰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광교호수공원에서 노는 것을 엄청 좋아해서, 아침마다 어린이집이 아닌 호수공원에 가자고 조른다. 그래서 이번주부터는 어린이집 하원 길에 매일 호수공원에 들른다. 아이가 좋아하는 돗자리와 비눗방울 장난감과 채소까까와 함께.

어린이집 적응 과정을 돌아보면서 느낀점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와 함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것이다. 밤마다 코야는 싫다며 버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왜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그렇게 싫어할까?’라는 질문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아이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2. 아이는 스스로 성장한다. 믿고 기다려주지 못했다. 부모 입장에서 조급함만 내세웠다. 아이가 세상과 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부침을 겪을 때마다 아이는 스스로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3. 선생님, 친구들과 교감하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고, 다양한 장난감, 놀이를 경험할 수 있는 등등 어린이집을 다니면 좋은점도 많지만, 36개월이 되기 전까진 부모가 직접 돌보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와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아이를 보면서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어린이집 적응기 #3

넷째 주 월요일엔 또 결석을 했다. 아이는 울고불고 발버둥치며 어린이집에 가기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아빠도 회사에 가야해서 어쩔 수 없다는 거짓말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러다 아이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 싶은 지점에서 나는 또 다시 두 손을 들었다.

다음날부터는 엄마와 같이 등원하기로 했다. 역시 처음엔 가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대비 무난히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 엄마의 출근이 늦어진만큼 퇴근도 늦어지다보니, 평소와 다르게 아빠와 저녁식사를 먹던 중 짜증을 내며 먹지 않겠다고 버텼다.

엄마와 같이 등원하는 둘째 날 아이는 심하게 울며 버텼다. 일이 바쁜 아내의 출근길이 겹쳐 있는 상황이라 우는 아이를 강제 연행하여 어린이집에 맡겼는데, 처음으로 우는 모습으로 어린이집에 들어가게 되어 나와 아내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하원할 때는 언제나처럼 즐거워보였고 어린이집에서 재미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뒤로 다행스럽게도 4일의 황금연휴를 보내고 있는데, 조금은 아이가 낯설게 느껴질정도로 울면서 떼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어제 낮에는 공원에 가서 놀자고 해도 집에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니 밤 늦게서야 나가자고 떼를 쓰고, 새벽 3시에 자다가 깨서도 나가자고 떼를 썼다.

하고 싶은 것은 계속 하자고 고집을 피우고, 하기 싫은 것은 절대로 안하겠다고 버틴다. 24개월 즈음에 똑똑해지고 자아가 발달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행동인지, 어린이집을 억지로 보낸 것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어디까지 받아 주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막무가내인 아이를 대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한번씩은 큰소리가 나가는 것을 보면서 부족한 자신을 탓한다. ‘내가 잘못 키우고 있나’, ‘앞으로 계속 아이가 이러면 어쩌지’ 등등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면서 오랜만에 우울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육아의 시기마다 힘듦의 종류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점점 물리적인 힘듦이 정신적인 힘듦으로 바뀌어간다.

아이가 흥분했을 때는 차분해질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주고, 아이를 위해서 꼭 가르쳐야 하는 규칙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이되 절대 화를 내서는 안 되고, 행동의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여러번 반복해서 설명해주어야 한다. 아이가 내 마음대로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은 내 욕심이며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계속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긴급보육 기간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나을지 계속 보내는 게 나을지 판단하기 어렵다. 아내와 내가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린이집 적응기 #2

첫 번째 낮잠 시도에 실패한 후 당분간은 오전에만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아이는 하원 할 때마다 차에 타면 바로 잠에 들었다. 신나게 뛰어 놀아서 피곤한건지, 많이 울어서 지친건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선생님께 듣기론 울지 않는 날이 없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하여 다시 재우려는 시도는 매번 실패했고, 아이는 엄마의 퇴근 길을 마중 나간 차 안에서 잠든 채 다시 집으로 돌아오거나, 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에 거실이나 주방에 업드려 잠에 빠지기도 했다.

하루는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던 아이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했다.

“아빠랑 같이 있으면 너무 좋아.”

기쁨과 안스러움이 섞인 눈물을 아이 몰래 삼켜야 했다.

9일째 되는 날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울면서 버텼고 나는 무너졌다. 아이가 너무 안스러워 집에서 돌봐주고 싶었다. 갑작스럽게 아이의 밥을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집에서 아빠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아이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키즈노트

셋째 주부터는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월요일엔 품에 안은 아이가 흘린 눈물, 콧물 한 바가지를 어깨에 받아 내고서야 겨우 아이를 달랠 수 있었다. 선생님께 인사만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는 거짓말로 겨우 집을 나서면 이후에는 의외로 순조로웠다. 하원할 때는 즐거워 보여서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수요일엔 도저히 설득이 되지 않아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23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맞을까?’

‘긴급보육 기간만이라도 집에서 돌볼까?’

삼성전자 어린이집은 만 1세에 들어가지 않으면 거의 자리가 나지 않는다. 만약 만 2세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가급적 36개월까지는 부모의 따뜻한 품에서 보살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23개월이 된 시점에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고, 너무 어린 나이에 하기 싫은 일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무엇이 우리 가족에게 최선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지금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시도를 잠시 멈추는 것보다 아이가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아이가 두 번째로 결석한 날 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요지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아빠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면 안 된다는 것. 마음이 아프지만 어제부터 나는 회사에 가는 아빠가 되었다. 빈 가방을 메고 함께 집을 나선다.

오늘 아침에도 울고 불고 버티는 아이를 30분 넘게 달래야했다.

아빠도 이제 회사에 가야한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오늘 오후에는 하원하는 아이의 밝은 미소를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