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성향 테스트

정훈이형의 소개로 정치성향 테스트를 받아볼 수 있었다.

http://pssc.egloos.com/1145763

경제적인 관점에서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것에 더하여 사회적인 관점에서 권위주의적인지 자유주의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좌우를 나누는 좌표 측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비슷하더라도 권위주의자였던 스탈린과 자유주의자였던 마하트마 간디가 유사한 정치성향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나 색깔론이나 지역감정등으로 좌파와 우파의 개념이 왜곡된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을 감안한다면 이 테스트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정치성향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한번쯤 도전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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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나의 테스트 결과는 예상대로 자유주의 좌파에 가까운 편. 허나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내 삶속의 부딛히는 실제가 같다고 장담할 수 없기에 살면서 두고볼 일이다.

빨간 신호등

빨간 신호등
홍세화 지음/한겨레출판

이 책까지 읽음으로써 홍세화님의 대부분의 저서를 모두 섭렵한듯 하다. 이 책은 1999년 5월부터 2003년 4월까지 <한겨레>에 실린 칼럼을 모은 것이다. 처음 2년 반은 그가 프랑스 땅에 머무르며 쓴 글이고 나중 1년 반은 영구 귀국한 후에 쓴 것이다. 정치와 사회현실에 무관심했던 옛날(?)의 이야기를 다루었기에 ‘배경지식이 있었더라면 좀 더 재밌게 읽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한편 반대로 몰랐던 사회현실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보람있는 독서가 될 수 있었다.

저자가 바라보는 한국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일관성을 지니기에 그의 다른 저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그의 생각을 마치 요점정리를 읽는 것처럼 책 한권에서 밀도있게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정된 매수에 시의성을 고려한 사회적 발언을 담아야 하는 칼럼의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현실문제를 비판하는 모습은 여느 다른 저서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강렬함에서 차이가 있었다.

누가 나에게 정치성향을 묻는다면 나는 스스럼 없이 좌파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김구 선생님의 바램처럼 나는 우리나라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보다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 차가운 자유 경쟁의 논리보다는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일상화된 사회가 되길 바란다.

나는 누군가의 정치성향이 좌파인지 우파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과 성향은 제각기 다를 것인데 다만 그 것이 사익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공익을 고려하고 있는지는 꼭 따져보아야 한다. 공익을 전제로 좌파와 우파가 머리름 맞대고 성숙한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부딛힐 때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철저히 배척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수구세력이다. 홍세화님의 수구세력에 대한 거침없는 하이킥을 볼때마다 나는 궁금하다. 그의 논리에 대해 수구세력은 무어라 반박할 수 있을까? 다른 문제를 끄집어 문제의 본질을 흐리거나 힘의 논리를 사용하는 구태를 여전히 반복할까? 특히나 수구언론의 눈가림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홍세화 지음/한겨레출판

두 개의 거울,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 프랑스 사회라는 거울은 나에게 악역을 맡을 것을 요구한다. 그 위에 외유에는 내강이 전제되어야 하듯이, 똘레랑스의 온화함은 앵똘레랑스에 대한 단호한 앵똘레랑스가 전제되어야 한다. 단호하지 않을 때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일상 속에서 무뎌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악역자의 칼날을 일상적으로 벼리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당당히 자신의 소신을 피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공부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망명자의 신분으로 프랑스에서 가난한 택시운전사로 일하다가 23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홍세화씨는 프랑스 사회라는 거울을 통해 한국사회를 바라보고 비판함으로써 악역자가 되기를 자처하였다.

“그렇게 프랑스 사회가 좋으면 거기서 살아라!” 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 개구리를 잡던 추억이 남아있는 대한민국의 의미를 그들은 모르고 있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서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일상 속에 무뎌진 우리들은 사회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사회문제의 본질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하고 알기위해 노력하면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라는 무책임한 독설을 뿌려대고 있는 것일까?

그의 이야기는 프랑스 사회에 흐르는 “똘레랑스”와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책에서 만난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겠다.

다니엘은 쉰한 살이 나이로 공장에서 30년 동안 일을 했는데 자주 결근했다는 이유로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는데 동료들은 이 소식을 듣고 곧바로 부당하다고 외치며 중역실로 몰려가 항의 농성을 벌였다. 이 항의 농성으로 중역 두 사람이 아침 9시 부터 저녁 6시까지 감금되었다는 이유로 근로자 46명이 법정의 피고석에 섰다. 동료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그들의 “연대의식”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치료받는 중이었다. 30년 동안 일을 시킨 뒤에 쉰한 살 먹은 사람을 내쫓는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추방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삶을 이해해야 된다. 그는 열 살에 아버지를 잃었고 월급 받아 누이들을 공부시켰다. 그는 지금도 혼자 살고 있다. 알코올은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한 행동, 그것은 노동자끼리의 연대이다. 우리는 자랑스러울 뿐이다.”


이번에는 우리의 사회를 돌아보자.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일으키면 우리는 불평하기 시작한다. 언론은 일제히 그들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왜 파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은체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는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만이 노동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노동자이며 지하철 노조의 그들은 같은 처지에 있는 “동지”인 것이다. 따라서 “연대의식”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 사회에서는 버스나 지하철 노조가 파업을 해도 시민들은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고 불평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이 더 공익을 강조하는 사회,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의 공은 public으로 공공의 이익을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추구하는 나라라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공공성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화국의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이념과 정책이 공공의 이익과 사회 정의 구현에 있어 올바른 것인가를 열린마음으로 끊임없이 토론해야한다. 작금의 우리나라는 단지 “국민의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것 이외에는 공화국의 특색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빨갱이로 몰아 사회로 부터 격리 시키는 것이 공화국의 이상이란 말인가? “색깔론”, “사상검증”과 같은 단어를 다가오는 대선에서는 만나지 않길 바란다.

그 밖에도 책으로 부터 파생된 여러가지 생각해볼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설익은 생각으로 스스로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아직은 부담스러워 이만줄인다. 책을 읽기전에는 일상 속에 무뎌저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책을 읽음으로써 보이기 시작한다. 열린마음으로 공부하고 생각하고 토론하여 당당한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상식의 통하는 사회”, “정의가 흐르는 사회”가 되는데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알아갈 수록 점점 좌파가 되어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