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운도 많이 따른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괜찮았던 한해였다고 생각한다.
1월 12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된 신입사원 과정에서 지도선배로 활동했다. 제법 긴 시간 강의를 해야했기에 이를 준비하기 위한 별도의 교육 과정도 수료했는데, 내가 강의하는 모습을 녹화하여 다시 보는 순간은 정말 곤욕스러웠다. 1주일의 짧은 시간동안 신입사원 친구들과 정이 많이 들었고, 지금은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 때 생각이 많이 난다. 5~6월에 다시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늦은 밤 잘 모르는 주제를 가지고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토론하던 모습에 감동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들을 생각하며 회사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 있다. 내가 더 얻은 것이 많은 셈이다. 어려운 시기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즐겁게, 씩씩하게 회사생활하길 바란다.
평생 속을 썩이는 영어를 어떻게 공부하면 좋을까 연초에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Grammar in Use Intermediate를 완전히 내 것이 될때까지 세번 반복하여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공부하는 정도에 그쳤다. 목표를 달성하진 못하였지만 포기하지않고 한번이라도 다 마쳤다는 것에 스스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단순히 문법을 공부했다는 느낌보다는 영어를 제대로 쓰는 법을 배웠다는 느낌이 컸고, 굉장히 실용적인 공부였다고 생각한다. 2016년에 세번째 공부까지 마치면 영어가 꽤 편해질 것 같다.
업무적으로는 자사 스마트 가전 플랫폼을 외부 업체 플랫폼과 연동하는 서버 개발업무를 진행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첫 번째는 상용 수준의 서버를 처음 개발해봤다는 것, 두 번째는 협업을 위해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성장을 위해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미국에서 학위를 딴 동료들이 있어 영어 커뮤니케이션을 그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다보니 기회를 많이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서버 개발 업무는 예상했던대로 매력적이었고 재미있었다. 개발 도메인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9월 초에는 아내와 함께 6박 7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연애시절부터 함께 여행을 참 많이 다녔는데 언제나 빡빡하게 짜여진 나의 계획을 따라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었다. 그러나 이번 제주도 여행은 여유를 테마로 잡고 렌트카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차로 이동했다면 느낄 수 없었던 순간들을 만끽하며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겼다. 숙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기도 하고, 바다 소리 들으며 낮잠을 자기도 하면서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제주도에서 살면 어떨까?’ 올레길을 걸으면서 생각해봤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궃은 날씨, 섬이 주는 고립감이 나를 우울하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일주일 정도의 여행지로 제주도는 너무나 멋진 곳이다. 1년에 한 번쯤은 아무런 계획없이 제주도에 들르고 싶다. 그래야 할 것만 같다.
8월에는 사내 코드잼이 예선에 참여하여 주말에 집에서 4개의 문제를 풀었는데, 난 참 머리가 나쁘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종일 문제와 씨름해야 했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문제는 결국 large set을 풀지 못했다. 월요일 출근해서 문제를 풀기 시작한 동료가 반나절만에 large set까지 풀어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본선 진출 기준이 그리 높지 않은 덕분에 오프라인 본선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본선을 앞두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제와서 노력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패배감에 굴복했다. 부담감에 본선을 망치는 꿈까지 꾸면서도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본선 당일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머리가 멍해서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주어진 5시간만은 최선을 다 해보자고 마음을 먹고, 나의 장점을 잘 활용하자고 생각했다. 알고리즘 문제를 잘 풀진 못하지만, 운이 좋아 평범한 풀이 방법이라도 생각해냈다면 빠르고 정확하게 프로그래밍 하는 것. 예선보다 본선문제가 쉬워서 전략은 제대로 먹혔고 턱걸이 점수로 코딩 전문가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고사양 노트북을 상품으로 받았고, 실리콘벨리 탐방을 다녀왔다. 실리콘벨리 회사들을 방문하여 많은 것을 보고 느꼈는데 별도의 글에서 정리해 보려고 한다.
하반기에는 방통대 경제학과 2학년으로 편입하여 2007년 대학원 졸업 후 정말 오랜만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하게 된 계기는 상반기부터 불문학과 3학년으로 편입하여 공부를 시작한 아내의 영향이 컸다. 학과 선택에 있어 고민이 있었는데,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는 정보통계학과가 맞다고 생각했지만,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따라서 경제학과를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학기 중간에 예정에 없던 실리콘벨리 탐방을 다녀오면서 강의가 밀려 시험기간에 상당히 고생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한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경제학 배경지식이 부족하고 방통대 강의, 교재를 공부하는 요령이 없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다음 학기에는 좀 더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 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는게 힘들다보니 가끔은 마음껏 공부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스스로 시작한 공부는 마라톤과 비슷하다. 달리고 있을때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가도 완주하고나면 다음 마라톤을 기다리게 된다. 지금 나는 다음 학기를 기다리고 있다.
2015년에는 유난히 퇴사한 동료가 많았다. 회사 분위기가 안좋았고, 한편으론 개발자에게 좋은 기회가 많았다. 개인적으로야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함께했던 시간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더욱이 남아 있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동료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다.
노력으로 일군 것 보다는 주어진 것이 많았던 한 해였다. 살면서 개인에게 주어지는 운의 총량은 동일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2016년은 운을 기대하기 보다는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한다. 2016년을 돌아볼 때는 스스로 일군 것들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