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윤문을 피하고 다소 건조하더라도 가급적 원문에 밀착하여 번역한 옮긴이의 노력과 작품 자체가 지닌 상징성 덕분에 읽기가 쉽지 않았지만, 끝까지 다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이 책만큼 많이 한 적이 또 있을까? 살면서 한 번씩은 데미안을 떠올리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잘 걷고 있는지 돌아보게 될 것 같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 번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기울여야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듣겠니?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내 삶의 데미안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스쳐간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하는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온 많은 책들이 나에게 데미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내 삶에 존재한 덕분에 이제는 그들이 없어도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인 나를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 이르는 길을 걸어야 하고 나는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데미안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른 누군가에게 데미안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