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조율 명장 1호 이종열 선생님의 책으로 음악과 조율에 대한 64년의 열정이 담겨 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서양음계를 연주할 수 있는 단소를 직접 만들어 불었고, 교회에서 만난 풍금을 고쳐 쓰기에 이른다. 일본어로 된 조율책을 읽으며 독학으로 조율 기술을 익혀나간 그는 시내 악기점, 국내 피아노사를 거쳐 현재는 예술의 전당의 수석 조율사를 맡고 있다.
피아노 연주를 공부하는 피아니스트나 피아노 조율을 연구하는 조율사는 자기가 틀린 것을 스스로 발견해서 바로잡는 능력을 가져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일일이 지적해 주어야만 깨달을 수 있는 수준이라면 이미 늦은 것이고, 그런 정도의 감각밖에 안 된다면 인생 끝날 때까지 안 될 것이다. 최고의 경지란 한도 끝도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이 최고의 경지라고 판단할 때까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앞으로 계속 정진하는 연구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맞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기보다 일에 미친 것 같다.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 가끔 음대 콘서트홀에 청을 받아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를 보이싱하는데 짧아야 다섯 시간, 길면 일고여덟 시간씩 걸린다. 그렇게 하고 나면 꼭 이튿날 병원에 간다.
요즘은 영국 사람이 쓴 <피아노 제작 기술>이라는 책을 세 번째 읽고 있는 중이다. 이제 겨우 기술이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벌써 80세가 되었다. 학문은 끝이 없다는 말이 맞는 말임을 깨닫는다.
어린시절의 열정을 80세까지 이어나가고 있는 선생님의 여정을 읽으며 부러운 마음, 부끄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이후 그럭저럭 원했던 길을 걸어왔지만, 부족한 열정과 그에 비례한 노력과 실력의 깊이는 너무나 얕아서 보잘것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콘서트 조율사에게는 조율이 곧 연주다. 조율하는 동안 나는 연주에 나갈 연주자와 똑같은 기분을 갖는다. 내가 만든 소리가 청중들에게 연주되기 때문이다.
연주나 조율은 듣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음정으로 연주하고 조율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작업이 끝나면 테스트를 위해 피아노를 쳐 본다. 피아니스트는 연주를 하는데 조율사는 땡땡한 손가락으로 때리거나 화음을 눌러 보기만 하면 제대로 테스트가 안 된다. 피아니스트처럼 쳐 봐야 한다. 그 이전 단계까지는 기계적 기능으로 되지만 이후부터는 기능만으로는 안 된다. 이 한계를 넘지 못하면 더 이상 올라서지 못한다. 장인이 되느냐 아니냐는 여기에서 갈라진다. 피아니스트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피아니스트가 잘할 수 있도록 해 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훌륭한 조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피아니스트를 돕는 마음으로, 관객들에게 최고의 음악을 들려주려는 마음으로 무대 뒤편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면 숭고함이 느껴진다.
최근 몇 년 동안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다. 엔지니어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이종열 선생님의 피아노 조율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끝없는 발전의 여정이 나에게는 좋은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