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JTBC 마라톤 풀코스 준비 차원에서 참가하게 된 대회. 풀코스 달릴 때 입을 쇼츠와 양말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룰루레몬 패스트 앤 프리 라인드 러닝 쇼츠 5″는 가격이 무려 12.5만원이나 하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정말 좋은 제품이었다. 안입은 것처럼 가볍고 착용감이 뛰어나다. 허벅지 근육도 적당히 잡아줘서 좋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수납공간이다. 에너지젤 4개 이상을 흔들림 없이 보관할 수 있어 풀코스에 최적화 된 제품이다.
삭스업 어텐션 드라이 러닝 크루삭스 PRO의 첫인상은 그저 그랬다. 생각보다 너무 얇아서 기능성이 있을까 싶었는데, 신어보니 압박감이 상당했고 오늘 레이스에서도 발열감, 미끄러움 등 불편함 일체 없었다. 풀코스에 착용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6시 50분까지 짐을 맡겨야한다고 해서 5시 10분에 기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4시 10분에 일어났다. 수면시간은 4시간 42분. HRV(심박변이도)는 이번주 내내 낮은 상태로 컨디션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대회장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 입고 짐을 맡기려고 줄을 섰는데 줄 길이가 어마어마했다. 결국 6시 50분까지 짐을 맡기지 못했고, B그룹 짐차는 문을 닫아버렸다. 같이 줄을 섰던 사람들은 우왕좌왕 뒷그룹 차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E그룹 차 근처에서 사람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품보관 스티커를 떼서 스스로 짐과 번호표에 붙이고 차로 짐을 던지는 것을 보았고, 본능적으로 따라했다. 그렇게 출발하기 몇 분 전에 겨우 짐을 맡길 수 있었지만, 과연 나중에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화장실도 못다녀오고, 준비운동도 못하고 출발선 앞에 섰을 때 니플 패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중에 샤워할 때 좀 쓰라리겠군’ 정도로 생각하고 싶었지만, 평소 훈련할때 미리 입어본 대회티는 소재가 거칠어서 걱정이 되었다.

아무튼 출발! 정말 오랜만의 서울 시내를 달리는 것은 매우 즐거웠다. 나도 모르게 빨라지는 속도를 수차례 제한하며 풀코스 30km까지 대회페이스 530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무난한 레이스가 이어지나 싶었는데, 9km 지점에서 배번호 좌측 상단이 찢어진 것을 발견했다. 속도를 늦춰 달리면서 위치를 옮겨 옷핀을 다시 달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찢어졌다. 한 번 더 시도하였지만 또 찢어져서 포기한채로 계속 달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배번호가 다 뜯어져서 손으로 들고 뛰는 사람이 여럿 있었고, 날아가 버린 배번호를 찾기 위해 역주행하는 사람의 옷에는 옷핀만 4개 붙어 있었다. 땅바닥에는 찢어진 배번호의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번호표를 친환경 소재로 만들면서 내구성을 고려하지 않은 듯 했다.
마포대교를 지나 여의도에 진입하였을 때 번호표 우측 상단도 찢어졌다. 찢어진 부분을 확인했더니 피가 묻어 있었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옷을 봤더니 가슴 부분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번호표를 다 떼서 손에 들고 오른쪽 가슴을 최대한 가린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왼쪽 가슴 부분은 아직 괜찮았다.
그러나 3km 쯤 더 달렸을 때, 왼쪽 가슴 부분에도 피가 비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평균페이스 530이고 뭐고 모르겠고, 빨리 이 수치스러운 레이스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에 속도를 높였다.
그 와중에도 날씨가 너무 좋아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서강대교 위를 달릴땐 기분이 정말 좋았다. 대회 운영은 엉망이었지만 코스와 날씨는 정말 정말 좋았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19~20km 정도 달렸을 때 심박수는 170 근처였는데 호흡이 정말 편했고 다리에 불편함도 없었다. 이대로 10km는 무난히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상반기 하프마라톤 레이스를 돌아보면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구간이었는데, ‘이렇게 편안할수가! 기량이 좋아지긴 했구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골인 후 짐을 찾고 옷을 갈아입을때까지, 수 많은 인파 속에서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다. 대부분 완주의 기쁨늘 누리고 있을 시간이어서 모르는 사람을 쳐다볼 여유는 없으리라 기대했다.
짐을 찾는 과정도 놀라웠다. 땅 바닥에 짐을 늘어놓고 각자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대회 운영은 엉망이었지만, 풀코스의 예행연습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앞으로는 니플패치를 까먹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