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

내가 볼링을 처음 접한 것은 경상남도 창원에 살 때, 정확히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서울에서만 살다가 먼 타지로 이사가서 정붙일 곳이 없었던 어머니께서 취미 생활로 볼링을 시작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아버지를 거쳐 나까지 볼링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어머니는 언젠가 볼링 대회에서 구사하신 멋진 폼으로 마산 MBC 저널의 표지모델로 발탁되신 적도 있다.

마산 MBC 저널을 장식하신 어머니

대충 자세를 배우고 처음 볼링을 쳤을 때, 나는 어떻게 공이 끝까지 꼬랑(?)에 안빠지고 굴러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100점을 넘기까지 상당히 오래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볼링에 영 소질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100점을 무난히 넘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부터 볼링이 너무 재밌었다. 방학이 되면 월 5만원을 내고 볼링장에 가서 지칠 때 까지 미친듯이 쳤다. 보통 하루에 12~15게임 정도 쳤던 것 같다. 수십만번(?)의 스텝을 밟았기에 자동차의 운전을 평생 잊어버리지 않듯 나는 볼링을 그렇게 내안에 받아 들이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온 후 몇 달만에 혹은 일년만에 볼링을 쳐도 전혀 어색하지가 았았으니까 …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마음먹고 집중하면 200점을 칠 수 있을꺼라고 자신하던 때, 경상남도 도청배 청소년 볼링대회에 출전하였다. 유니폼도 없이 라운드 티에 청바지를 입고 등장한 나는 심판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다른 학생들은 다 학교 볼링부 소속 준 선수들이였다. 소심한 나는 안그래도 심판의 꾸지람으로 인해 주눅이 들었었는데, 다른 애들은 다 선수이고 이상한 괴성을 지르며 볼링을 쳐서 기가 많이 죽어있었다.

재밌었던 건 정식 대회라서 파일라인을 밟으면 ‘삐’ 소리가 나며 0점 처리되었고, 평소에 나는 파울라인을 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연습투구에서 당당하게 ‘삐’ 소리를 내버렸다. 그 후로 약간 신경써서 실전에서는 파울을 하지 않았지만 나랑 같은 레인에서 쳤던 부산상고 누나(?)는 간간히 ‘삐’ 소리를 울려 웃음을 참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3게임 평균으로 순위를 가르는 게임이였는데, 나는 먼 타지였던 김해에 친구와 둘이 가서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문제는 레인 상태가 거시기 하여 나의 훅이 전혀 먹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 사용하는 스파트로 첫게임을 치다가 망쳐버렸다. 변화가 필요했다. 나는 훅이 먹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직구와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대각선으로 레인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겨우 평균 150점으로 경기를 마쳤고, 어이없게도 그 점수가 남자 중등부 1위였다. 그렇게 나는 홀로 청바지를 입고 고독한 승부를 결정지었다. 한동안 볼링선수로 나가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당시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더라면 어떻게 됬을지 모르겠으나, 그랬더라면 지금쯤 어느 작은 볼링장에서 코치를 하며 아줌마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용호 볼링장으로 옮겼다. 여름 방학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강좌를 들었고 그 때 강사가 그당시 프로볼러 랭킹 1위였고 퍼팩트를 30회 이상 기록한 배대권 프로였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1주일 동안 폼연습만 다시했다. 2주를 그렇게 기본기를 철저히 다시 배우고 전열을 가다듬은 나는 그 방학에 지금도 깨지 못하고 있는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 날은 한마디로 신들린 날이였다. 첫게임은 190점대를 기록했고 둘째게임에 사고를 치게되었다. 터키로 시작하여 4프레임 스페어, 5프레임 스트라이크, 6프레임에 스페어, 그 이후로 스트라이크 아웃! 점수는 259점이였다. 그 다음게임도 230점을 넘었고 그 날은 총 10게임을 쳤는데 5게임에서 200점을 넘었다. 내평생 259점을 넘어볼 수 있을까?

카이스트에 와서 생각지도 못하게 볼링클럽이 만들어졌고, 일주일에 한번씩 꾸준히 볼링을 즐기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너무 점수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기본기를 다져서 볼링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배부른 욕심이 있다면 나도 마이볼을 가지고 싶다. 어머니와 손크기가 비슷하다고 하여 늘 어머니 공을 물려받았는데, 지금 쓰고 있는 공도 회전력이 좋지 않다고 하여 버려진 것을 내가 업어온 것이다. 정말 내 손에 맞는 꽤나 괜찮은 공을 하나 가지고 싶다. 공이 손에 정확히 맞으면, 회전력이 2배는 상승할 것 같다. 올해 하나 질러버릴까!

크게 힘이 들지도 않고 사람들과의 친목에도 좋은 볼링 …
볼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마누라를 만난다면 아마도 평생 즐기는 레포츠가 될 듯 하다 …

음악과 기억

어렸을 때 아주 무서운 영화를 봤는데, 그 당시 김원준 2집의 노래를 매우 즐겨들었다. 영화를 본 이후로 “나에게 떠나는 여행”이라는 노래와 그 영화의 무서웠던 기억이 매칭되면서 노래조차 싫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런 느낌을 갖는 경우가 참 많다. 누군가를 마음에 두었을 때, 즐겨듣던 음악이 있었고 그 음악을 참 좋아했다. 사람의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한동안 그 음악이 듣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감미롭게 들려오는 것을 보면 마음이 많이 정리되었나보다 …

이승환

아주 오래전에 나는 이승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 하면 싫어하는 분류에 속하는 가수중 한명이였다.목소리가 느끼하고 여자같다고 생각했던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여튼 비슷한 이유에 달갑지 않았고 그 때가 ‘천일동안’이라는 노래를 한창 부를 때 였다.

그런 내가 이승환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이승환을 광적으로 좋아하던 한 여학생 때문이였다. 나에게 있어 첫사랑이라고 생각되는 친구 … 중학교 2학년 때 첫 눈에 반해서 대학교 1학년때 까지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덕분에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지고지순한 순진남으로 기억되고 있다 … ^^;; 근데 지금도???

우연한 기회에 그 친구와 만나면 인사를 나누기로 했고, 그 다음 날 현관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날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 친구를 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때 처럼 이쁜 여자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 후로도 만나면 손을 흔들어 인사만 나누었다. 말은 한마디도 못했다. 그 때 나는 심하게 내성적이였고, 자신이 없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아마도 수 많은 친구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각설하고 …

그 친구를 이해하고 싶어서 이승환의 노래를 접하기 시작했다. 처음 구입한 앨범은 His Ballad라는 앨범이였는데 그동안의 히트곡을 발라드 위주로 수록해 놓았다. 텅빈마음, 다만, 그가 그녈 만났을 때 등등 마음에 드는 곡이 많았고 그렇게 시작되어 1집부터 5집 까지 그 사이에 나온 여타 엘범까지 모두 구입해서 섬렵한 후 모든 엘범의 곡명과 가사와 곡 순서까지 외울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 엘범들은 예전과 스타일이 조금은 달라져서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의 팬이다. 개인적으로 추천곡은 변해가는 그대, 천일동안의 라이브 버젼 … 기본적인 발라드와 한때 헤비메탈에 심취했다는 이승환의 락적인 요소가 적절이 가미되어 소름끼치는 감동을 주는 명곡 …

달리는 이유

내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는

육체와 정신을 병들지 않게 하려는 본능적인 의지이며

달리는 것이 나를 단련시킬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 원희룡의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 에서 –

더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내가 달리는 이유를 가장 명확히 설명해주는 구절인 것 같다 …

펀런(Fun Run)

펀런(Fun Run) 이라고 하는 것은 말그대로 달리기를 즐기는 것이다.
나는 과연 펀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을까?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는 상당히 불순(?)했다. 살을 빼기 위함이였으니까 … 100kg이 넘어 도서관에서 업드려 자는게 불가능해 지고, 혼자 양말신기가 버거워지고, 38인치 바지를 입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나는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학원 입시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였기에 공부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집에서 굴러다니는 책이 한권있었으니 그 제목이 바로 ‘나는 달린다’ 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어머니께서 어디서 받아오신 책이였는데 이 책 한권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달린다

책 표지에 써있는 문구부터 가슴에 들어왔다.
“그래, 달려! 첫발을 내딛는 순간, 정체된 삶도 함께 달린다.”

책의 저자는 독일 외무무장관인 요쉬카 피셔이고, 그는 112kg의 뚱보에서 삶의 위기를 느낀 후,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새벽의 여명을 뚫고 달려나가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1년여후 그는 75kg의 날씬한 몸을 유지하게 되고 마라톤 풀코스 42.195km 완주에 성공한다. 무려 그가 50살 일 때 …

이 책을 단숨에 읽고, 나도 시작했다. 동네 공원의 길이는 560m 였고 여기서 부터 시작했다. 나의 체중은 101kg이였고 560m를 한번에 뛰는것 부터 고통스러웠다. 뛰다가 죽을 것 같으면 차라리 죽자는 생각으로 참고 또 참으며 달렸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두달 반정도 지났을 때에는 체중은 81kg이 되어있었고 560m를 한번에 8번 뛸 수 있게 되었다.

카이스트에 와서 달리기에 환경이 너무 좋았고, 대회를 신청해놓고 준비하다 보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으나 만족스러운 기록으로 10km를 완주했다. 솔직히 대회에서 뛸 때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다시 뛰고 싶어지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뛰고 싶을 뿐이다 …

다음대회가 한달도 남지 않았지만 이제는 펀런을 하려고 노력한다. 달리는 속도도, 거리도, 시간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달리고 있고 즐겁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달리기는 나의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다. 달리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감을 회복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좀 더 내공이 쌓여 하루에 10km 정도 편하게 달리면서 펀런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

그리고 30살이 되기 전에 마라톤 완주에 도전할 것 이다 …

(p.s)
‘나는 달린다’는 마라토너들 사이에서 마라톤 입문서로 읽혀지고 있으며,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의 저자인 원희룡의원도 ‘나는 달린다’를 읽고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