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다닐 때 만원 버스, 만원 전철타고 학교 다니는 것이 힘들어 대학원은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진학하고 싶었다. 대학원 기숙사 생활이 끝나고 10년이 지난 지금 수원에서 서울까지 약 30km 거리를 매일 출퇴근 한다. 플렉서블 타임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차가 막힐까봐 매일 새벽같이 출근한다. 야근이라도 안 하면 그나마 다행.
팍팍한 일상이 이제는 좀 지겨워 대안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 지방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디지털 노마드』에 이어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을 읽게 되었다.
제주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로 떠난 9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들의 직업은 의외로 예술, 문화 쪽이 많았다. 이 책의 출판사 남해의 봄날은 통영에 위치한 지역 출판사인데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출판사의 사장님이어서 흥미로웠다. 한편으론 나와 같은 SW 개발자의 이야기가 없어 아쉬웠다. SW 개발자가 지방에 정착한 사례를 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귀농, 귀촌 이야기가 아닌 서울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용기를 엿볼 수 있었다. 그 용기 덕분에 그들은 서울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이웃들과 함께 진짜 삶을 살아가고, 누군가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
출퇴근이 조금 힘들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지만, 언젠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나도 그들과 같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경제적인 여유과 삶의 여유를 바꿀 수 있을까?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내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선택할 수 있는 삶이 곧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기에 먼 미래에 예상되는 일이라도 미리 관심을 가지고 틈틈히 준비를 해두면 좋을 것 같다.
마음이 힘들었던 최근 1년 나는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을 몰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한채 그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끌려 다니며 괴로워하기만 했다. 다행히도 9월 초 안식휴가, 10월 초 긴 추석연휴를 통해 충분한 휴식을 가질 수 있었고, 이때 만난 불교의 가르침은 나를 현재로 옮겨 놓았고 덕분에 지금은 마음이 한결 가볍다.
내소사 템플스테이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나 조금 읽어 보고 주문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 보았다.
자애, 관계, 공감, 용기, 가족, 치유, 본성, 수용
주제별로 혜민 스님의 수기와 짧은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괴로움 속에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따뜻함으로 가득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짧은 문장들은 살다가 가끔 다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몇 개는 자주 볼 수 있는 곳에 옮겨 적었다.
생각에 사로잡혀 힘들었던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문장 몇 개를 여기에 옮겨 본다.
지금 스트레스가 많고 힘든 이유가 혹시 내 마음 안에 너무 많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생각이 들어와 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한번 살펴보세요. 단식을 하듯 며칠간 전화와 인터넷을 끊고 내 몸과 마음에 귀 기울여보세요. 내 마음이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돌아옵니다.
가끔씩 혼자 조용히 있을 때 느끼는 마음의 고요는 마음에 주는 약과도 같습니다. 홀로 조용히 있을 때 자신의 중심을 되찾으며 내 안의 신성과 만날 수 있습니다. 고요함의 약을 스스로에게 처방하세요.
마음에 고민이 많아 우울하고 힘들 때 머리를 들고 앞에 있는 사물을 아주 자세히 관찰해보세요. 사물을 보는 순간 생각의 진행이 멈추면서 조금 전 마음의 고민이 그냥 ‘생각 덩어리였구나.’하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생각들에게 너무 힘을 실어주지 말고 ‘고작 생각들이었어.’하세요.
생각에서 빠져나와 현재로 돌아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숨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회사에서 복잡한 일들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할 때 이제는 들어오고 나가는 숨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나를 되찾고 생각의 존재를 알아채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늘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신혼여행으로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이 도시에서 한 달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은퇴 이후에나 가능할꺼라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은퇴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가 생겨난 사회적 배경, 원격근무를 바라보는 회사의 입장, 개인의 입장 등 다양한 측면에서 디지털 노마드라는 현상을 조명하고 해석과 전망까지 곁들인 좋은 책이다. 주제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부분의 업무를 원격으로 처리하고 있다. 다른 건물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이메일, 전화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같은 층에서 일하는 동료와 커뮤니케이션 할 때도 이어폰을 꽂은 채 슬랙을 이용하기도 한다. 물론 오프라인 협업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기 위해 매일 1~2시간을 길에서 허비한다.
원격근무에 대한 조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완전한 원격근무 기업이 되거나, 완전히 원격근무를 하지 않는 것이 그 중간의 어중간한 상태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온라인에 공유되지 않았을 때 혹은 그 반대일 때 정보의 비대칭으로부터 발생하는 혼란을 겪어 보아서 이 조언이 크게 다가왔다.
아내가 다니는 회사는 자율 출퇴근제에 이어 원격근무제까지 곧 시행한다고 하니 우리나라도 조금씩 문화가 바뀌고 디지털 노마드가 생겨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가정과 일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9월 초 2주의 안식휴가 기간 중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나에게 아내는 내소사 템플스테이를 추천했다. 아내는 2009년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려 주었다. 자신을 돌아보기에는 템플스테이처럼 좋은 환경이 없다고 생각해 3박 4일 휴식형으로 신청하고 9월 5일부터 8일까지의 일정으로 다녀왔다.
새벽 5시 50분에 집을 나서 마을버스-지하철-시외버스-농어촌버스를 이용해 내소사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넘어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있었기에 힘들지도 조바심이 나지도 않았다. 틀린 길로 가더라도 돌아가면 그만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농어촌버스를 타고 내소사 가는 길에 줄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잠시 정차했는데, 몇 분의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도시의 시간과는 확연이 다른 느낌. 물리적인 시간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니 왜 그렇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았을까 싶었다.
아내가 이야기 했던 전나무숲길을 따라서 내소사로 가는 길 은은한 불교음악이 들렸고 내안에 평온함이 퍼져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템플스테이를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고,
서해낙조라는 이름의 방을 배정 받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혼자 왔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이 있는 넓은 방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방에는 베개, 이불, 작은 테이블 하나가 전부여서 계획했던 것처럼 자신을 마주하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절에서 준비해 주신 옷으로 갈아입고 저녁공양까지 비는 시간에 근처 지장암과 내소사 경내를 둘러 보았다. 능가산과 내소사의 어울림이 아름다웠다.
휴식형으로 와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차분히 보냈지만, 3박 4일의 일정이어서 틈틈히 체험형으로 오신분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첫재 날: 사찰안내, 타종체험, 저녁예불, 달빛아래 차담과 명상
셋째 날: 관음전 참배 및 숲길 명상, 스님과 다담
넷째 날: 아침예불, 108배 & 명상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1박 2일의 일정으로 오셔서 매일 새로운 분들을 만났는데, 나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혼자 온 나를 이름 모를 보살님과 지묵스님께서 살뜰히 챙겨주셨는데 정말 감사했다. 내소사에 대한 좋은 기억의 팔할은 그분들 덕분이다. 고맙습니다!
내소사가 내려다 보이는 관음전에 올라 문을 활짝 열고 문 밖을 바라보고 앉아 오랫동안 명상을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삶이 힘들고 고달플 땐 눈을 감고 관음전에서 느꼈던 평온함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첫째 날 저녁예불을 체험하고 느껴지는 바가 없어 둘째 날부터 예불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마지막 날 만큼은 아침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고요한 새벽이어서 그런지 저녁예불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예불을 드리고 이어 108배에 참여했다. 108배 참회문을 들으며 절을 하면서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느낀 바가 많았기에 템플스테이 기간 동안이라도 매일 108배를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첫째 날 저녁공양부터 마지막 날 아침공양까지 8번의 식사를 했다. 아내의 이야기대로 채소, 야채로만 이루어진 음식은 늘 다음 공양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맛있었다. 부페식이었지만 사람 수 만큼의 음식이 준비되기 때문에 늘 나누어 먹는다는 느낌으로 음식을 가져가야 했다. 합장을 하고 묵언한 채 쌀 한톨도 남김 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사용한 식기는 직접 설거지를 했다. 이 때의 습관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도 식사 후에는 바로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 보냈는데,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이유에 대해서 좀처럼 게으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잠깐의 공백도 견디지 못하고 초조함에 어쩔 줄 몰랐던 일상에서는 불가능했을 긴 시간동안 자신과 대화를 나눈 덕분에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하심(下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둘째 날에는 전나무숲길 옆 탐방로를 이용해 직소폭포에 다녀왔다. 절에서 빌려준 옷을 입고 물통 하나 들고 나선 길이었는데 보통 난이도로 표시된 등산로는 보통이 아니었다. 관음봉삼거리에서 직소폭포까지 가는 길은 무난했지만, 관음봉삼거리에서 내소사 사이 길이 너무 험해서 내려올 때는 원암마을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넘어져 손가락이 까지는 등 힘들게 직소폭포에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대단한 감흥은 없었다. 10분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길을 나섰다. 2012년 지리산 종주에서 깨달았던 바가 다시 떠올랐다. 멋진 풍경을 보는 시간은 잠깐이고 대부분의 시간은 힘들고 고달픈데 여기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을거라고. 장미빛 미래를 기대하며 살기보다 지금에 감사하고 지금을 즐기며 살자고 다짐했다.
이제 다시 일상이 시작된다. 열심히 세상사와 씨름하다 보면 또 힘들고 지칠 순간이 오겠지만 내소사에서 보낸 시간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나에게 위로가 되어 줄 것 같다.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생겨 다행이다. 내소사의 이름 뜻 “이 곳에 다녀가신 이들 모두 새롭게 소생하라”처럼 나를 다시 찾게 해준 내소사를 추억하며 그곳에서 배운대로 하심(下心)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