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지나친 윤문을 피하고 다소 건조하더라도 가급적 원문에 밀착하여 번역한 옮긴이의 노력과 작품 자체가 지닌 상징성 덕분에 읽기가 쉽지 않았지만, 끝까지 다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이 책만큼 많이 한 적이 또 있을까? 살면서 한 번씩은 데미안을 떠올리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잘 걷고 있는지 돌아보게 될 것 같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 번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기울여야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듣겠니?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와.

내 삶의 데미안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스쳐간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나와 함께하는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지금까지 읽어온 많은 책들이 나에게 데미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내 삶에 존재한 덕분에 이제는 그들이 없어도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인 나를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 이르는 길을 걸어야 하고 나는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데미안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른 누군가에게 데미안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윈키아 플래너 입문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OmniFocus, Confluence, WorkFlowy 등의 앱을 활용하여 할 일 관리를 해왔으나 접근성의 한계를 느끼고 종이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리저리 알아보다 플랭클린 플래너의 한국 현지화 버전이라 할 수 있는 2018 윈키아플래너 소프트커버 네이비 미디움(A5)를 구입했다.

이 플래너를 선택한 이유는 24시간 7일을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도 그럭저럭 열심히 살았지만 빈틈이 많았던 것 같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목표의식 없이 무의미하게 흘려버린 시간이 적지 않았다. 2018년에는 플래너를 늘 손에 들고다니며 꽉 찬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내 심장을 쏴라

도입부가 잘 안 읽힌다는 심사평처럼 처음엔 다소 지루했다. 책은 덮어두고 영화를 볼까 하는 유혹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꼭대기에 다다르기만 하면 나머지 길은 활강장이 된다는 심사평처럼 끝으로 달려갈 수록 가슴은 뜨거워졌다.

일주일의 폐쇄병동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작가에게 환자들이 남긴 말은 ‘우리 한을 풀어달라’였고, 이 책은 작가의 대답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명,
승민, 만식씨, 김용, 십운산 선생, 거리의 약사, 경보 선수, 한이, 지은이, 우울한 수험생을 통해 그들의 삶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나는 또 한 번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음에 감사했다.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화가 났다. 잘 놀고 있다가 별안간 따귀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존재의 징표’에 대해 물은 거라면, 내놓을 것이 없었다. 내 인생에서 나는 유령이었다. (p240)

승민의 모습은 희미해졌다가 땅거미 속으로 빨려들었다. 헤드랜턴의 빛만 두어 번 깜박거렸다. 이윽고 그마저 사라져버렸다. 언덕에는 죽음 같은 정적이 흘렀다. 싸늘한 바람이 밤을 몰아왔다. 몸이 떨려왔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격한 떨림이었다. 목과 가슴 사이에선 불처럼 뜨거운 것이 오르내렸다. 그 뜨거운 한기에는 두 개의 이름이 있었다. 자신의 세상을 향해 날아간 자에 대한 ‘경외’, 갈 곳이 없는 자의 ‘절망’. (p328)

온전히 나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무난히 잘 살아가고 있지만 진짜 너의 인생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최근 고민은 나에게 지워진 부담을 가볍게 하는 데에만 있었지, 내가 주체가 되어 내가 짊어질 부담을 스스로 선택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 눈 앞에 닥친 현실을 처리하는 데에만 급급해서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데에 인색했다. 내소사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딥 워크

어쩌면 올해의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웃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파트장의 역할이 명문화 되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매순간 고민에 빠진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가장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이벤트 드리븐이다. 대기하고 있다가 오프라인, 온라인 가리지 않고 누군가의 요청을 받으면 즉시 처리한다. 이벤트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므로, 바쁘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도 늘 함께 남았다. 이게 최선일까?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다르게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피상적인 일들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피상적인 일들로 인해 깊이 사고 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시간분배에 신경을 쓰고 있다. 남다른 성과는 분주히 움직이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이 몰입하는데서 온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우쳤기 때문이다.

저녁식사 이후 시간에는 일을 하지 않고 가족과 보내면서도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 낸 저자(칼 뉴포트)처럼 딥 워크를 실천해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싶다. 우선은 분 단위의 시간 계획을 통해 할 일을 신중히 선택하는 훈련부터 진행하고 있다.

공터에서

1900년대 대한민국을 살아온 마씨 집안 이야기. 1910년 태어나 1979년 세상을 떠난 마동수의 이야기를 세상에 정착하지 못하고 겉돌던 아버지를 외면하고 싶었던 두 아들 마장세, 마차세가 이어간다. 시대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던 세대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이북에서 피난 길을 나서야했던 나의 할아버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집안을 일으켜야했던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선대의 노력 덕분에 나와 동생 세대는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어쩌면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있지만, 아버지 세대를 바라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마음에 작은 티끌하나 없이 자신의 삶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