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움

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김영사

해외유학후 대학교수를 꿈꾸던 꿈많던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책이다. 대학원 시절 다시 읽고 싶어서 집을 샅샅히 뒤졌으나 찾지 못했던 것을 올해 이사간 집에 한달만에 찾아 갔다가 우연히 발견했고 분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읽기 위해 가져왔다.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을 받은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이 책을 통해서 삶과 학문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삶을 전한다. 이 책이 평범한 나에게 더 와닿았던 것은 스스로가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할 각오를 통해 끝까지 해내는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태도가 감명 깊었기 때문이다. 노력하면 불가능은 없다고 믿고 싶었던 시절에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학문에 대한 저자의 성찰은 언제나 삶의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나는 학문 자체에 대한 것 보다도 더 큰 삶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과 억측을 구분하며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 을 수 있었고,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깊이 생각하라는 소심의 마음은 창조 혹은 문제해결을 위해서 연구자가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임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배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다. 사람은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하여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배운다고 하였다. 살아 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이 지혜임을 깨닫는다면 하루하루 배우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싶다.

다음의 한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배워야 할 것은 끝까지 해내는 그의 끈기라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에 부딛히면 나는 미리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 것이 보통 두뇌를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노동자의 날, 학교에 다녀오다

노동자의 날을 맞아 상운이와 함께 대학원 연구실에 다녀왔다. 버스에서 상운이와 이런저런 사회생활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잠깐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 버스는 유성 IC를 유유히 통과하고 있었는데, 늘 있었던 일처럼 익숙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교차했다.

학교는 여전히 고요했다. 눈에 띄는 변화라고는 전산과 건물의 형광등을 교체해서 전체적으로 이전보다 밝은 느낌을 주었다는 것 정도. 내가 머물렀던 2430호의 문을 먼저 두드렸는데 정한형과 윤경누나가 반갑게 맞아 주셨다. 다른 방들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린 후 교수님 방에 찾아가서 상운이와 함께 교수님과 담소를 나누었다.

친친에서 교수님과 연구실 식구들과 함께 점심식사로 목살을 먹은 후 연구실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연구실에 들어오기로 한 석사 신입생도 보고, 결혼을 앞 둔 정한형의 여친님도 뵙고, 언제나 밝은 선애누나도 만났다. 룸메이트였던 순일이, 사람 너무 좋은 현정이 누나도 잠깐이지만 너무 반가웠다.

마치 내가 그자리에 있었던 그때처럼 사람과의 만남과 내가 서있는 장소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와 또 다른 가족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왕복차비에 상운이와 함께 점심을 산다고 적지 않은 돈을 쓰긴 했지만, 그리웠던 그리고 고마웠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기에 너무나 행복한 하루였다. 세상사는 즐거움은 이런게 아닐까?

피아노

어린시절 누구나 음악학원 혹은 미술학원 중에 하나 정도는 다녔을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 아마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나는 어머니의 권유(?) 혹은 강요(?)로 예명음악학원이라는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나의 첫 피아노 선생님은 엄한 할머니(?) 선생님이였는데 마귀할멈 같은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손이 참 이쁘네. 나랑 바꾸자”고 하셨던 것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어린이 바이엘 상”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미술에는 끔찍히도 취미가 없었던지라 비교적 피아노 연주를 배우는 것 그리고 음악 이론을 배우는 것은 재밌었다. 그 때 배웠던 음악 이론이 훗 날 중고등학교 음악시간에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다.

무엇을 배우던 간에 언젠가 한번은 벽에 부딛히기 마련이다. 더 큰 도약을 위한 인내의 시간이랄까. 나는 그 인내의 벽을 넘지 못하고 피아노에 흥미를 잃었다. 연습해도 실력이 늘지 않아서 그 당시 배웠던 곡들은 내 능력으로 연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피아노 학원을 그만다니고 싶다는 의사를 부모님께 밝혔을 때 아버지께서는 지금 그만두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후회할꺼라고 말씀하셨고 요즈음 나는 그 때 피아노를 그만둔 것을 후회하고 있다.

사람의 취향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기도 하는 것인지 약 일년전부터 클래식, 뉴에이지등의 연주곡들을 듣기 시작했다. 특히 이루마나 이사오사사키의 곡을 즐겨 듣는 편인데 듣고 있자면 직접 연주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가수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직접 부르는 것이 즐겁고, 운동 경기를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것이 즐거운 것 처럼.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던가! 직장인이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알아보았다. 직장인이 다니기에 적합한 곳으로 유명한 곳은 그린아트 음악학원이였는데 선릉에 위치하고 있어 회사에서 약간 거리가 있다. 수업료는 한달에 10만원. 게다가 보컬수업도 있었는데 사실 보컬 수업이 더 구미가 당긴다. 보컬수업의 수강료는 한달에 20만원.

IT 개발자로 일하면서 40~50분 거리에 위치한 음악학원을 다니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에 대하여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가 우연히 회사 연구소와 같은 건물 3층에 있는 음악학원에 회사 분이 다니시는 걸 목격했다! 세달치 수강료 27만원을 한번에 내야하는 것이 압박스럽다는 것이 문제. 끈기를 가지고 계속 배울 수 있을지 좀 더 고민해보고 확신이 있다면 용기내어 문을 두드려 보자.

빨간 신호등

빨간 신호등
홍세화 지음/한겨레출판

이 책까지 읽음으로써 홍세화님의 대부분의 저서를 모두 섭렵한듯 하다. 이 책은 1999년 5월부터 2003년 4월까지 <한겨레>에 실린 칼럼을 모은 것이다. 처음 2년 반은 그가 프랑스 땅에 머무르며 쓴 글이고 나중 1년 반은 영구 귀국한 후에 쓴 것이다. 정치와 사회현실에 무관심했던 옛날(?)의 이야기를 다루었기에 ‘배경지식이 있었더라면 좀 더 재밌게 읽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한편 반대로 몰랐던 사회현실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보람있는 독서가 될 수 있었다.

저자가 바라보는 한국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일관성을 지니기에 그의 다른 저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그의 생각을 마치 요점정리를 읽는 것처럼 책 한권에서 밀도있게 만나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정된 매수에 시의성을 고려한 사회적 발언을 담아야 하는 칼럼의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현실문제를 비판하는 모습은 여느 다른 저서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강렬함에서 차이가 있었다.

누가 나에게 정치성향을 묻는다면 나는 스스럼 없이 좌파라고 말한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던 김구 선생님의 바램처럼 나는 우리나라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보다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 차가운 자유 경쟁의 논리보다는 연대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일상화된 사회가 되길 바란다.

나는 누군가의 정치성향이 좌파인지 우파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과 성향은 제각기 다를 것인데 다만 그 것이 사익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공익을 고려하고 있는지는 꼭 따져보아야 한다. 공익을 전제로 좌파와 우파가 머리름 맞대고 성숙한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부딛힐 때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철저히 배척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수구세력이다. 홍세화님의 수구세력에 대한 거침없는 하이킥을 볼때마다 나는 궁금하다. 그의 논리에 대해 수구세력은 무어라 반박할 수 있을까? 다른 문제를 끄집어 문제의 본질을 흐리거나 힘의 논리를 사용하는 구태를 여전히 반복할까? 특히나 수구언론의 눈가림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반상회

사택 식구 10명을 대표(?)하여 건호형과 같이 난생 처음으로 반상회에 참가했다. 아줌마들이 모이는 자리라서 현관을 통과하기가 영 쉽지 않았으나 쭈뼛쭈뼛거리며 들어서는 우리를 너무나 반갑게 맞아 주셔서 무리 없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참석 안하고 몇 천원의 벌금을 내면 그만이기도 하지만 소리소문 없이 한집에서 남자 10명이 득실대면 이웃들이 불안(?)해 할까봐 인사도 드릴겸해서 두달에 한번 있는 반상회에 참석하기로 사택 식구들과 합의를 보았고 입주한 후 두번째인 반상회에 건호형과 함께 참석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아줌마들께서는 누구 집 딸이 몇살인가에 대해서 조사를 착수하기 시작하셨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소개시켜준다는 이야기도 오고 갔다. 다음에 또 보자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고 가신 분도 계시고…

이번 반상회에서는 별다른 안건이 없었고 리모델링과 재건축에 대한 박식한 어떤 분의 강연(?)이 거의 40분 동안 이어졌다. 사택이 분당의 중심가에 있고 55평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서민(?)인 나로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리모델링에 대한 그들의 욕구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아니면 부동산의 자산가치 상승을 통한 재산증식을 원하기 때문일까?

3년동안 월급의 80%를 공격적으로 투자해서 스스로 1억을 모으겠다는 나의 계획과 아들에게 강남에 10억짜리 아파트를 사주고 싶은 자칭 중산층(?) 아줌마들의 바램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늘도 나는 모네타를 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