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JTBC Seoul Marathon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달리면서 마이크 타이슨이 한 이 말을 계속 떠올렸다.

대회뽕은 없었다. 지금의 실력으로 32km까지 530 페이스로 미는 것은 무리였다. 훈련 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대회에서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고, 한 없이 겸손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준비는 순조로웠다. 전날에 삶은 감자, 파스타, 피자로 카보로딩을 잘 했고, 당일 아침에는 카스테라, 바나나를 먹었고, 화장실을 3번 다녀온 덕분에 레이스 중에 화장실에 갈 일이 없었다.

출발도 순조로웠다. 양화대교 남단에서 여의도로 가는 좁은 길도 정체가 그리 심하지 않았고, 공덕역에서 시작되는 업힐도 별로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18km 지점을 달릴때 시작되었다. 오른쪽 발목에 피로가 쌓여 경련이 날 것만 같았다. 최대한 자세에 집중하면서 발목을 쓰지 않도록 신경썼다. 그러나 상태가 조금씩 안 좋아지면서 처음으로 완주를 의심하게 되었다. ‘교통카드도 안 가져 왔는데…’

끝까지 완주만 할 수 있어도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달렸다. 그러나 오른쪽 발목마저 상태가 악화되었고, 왼쪽 햄스트링도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회를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몸상태가 야속했다.

어린이 대공원 옆을 달릴 땐 이런 생각을 했다. ‘정신적으로 놔버리면 뇌도 근육을 제어하기를 포기할것만 같다. 포기하지 말자. 최대한 가보자.’

잠실대교를 건널 때 마라톤은 30km부터 시작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리가 무척 무거웠다. 쥐가 나지 않도록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달려 30km까지 평균 페이스 532를 겨우 맞췄고, 남은 거리는 600으로만 달려도 서브4는 달성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나 34km를 조금 넘었을 때, 결국은 쥐가 나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걸으면서 상태를 지켜보고 조금 괜찮아지면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실력이 부족하구나…’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3,450km를 달리면서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던 앞쪽 허벅지 안쪽에도 심한 근육통이 찾아와서 걸으면서 회복해야만 했다. 그냥 하체는 여기저기 다 아팠다. 풀코스는 풀코스였고 30km부터 시작이었다.

결승점을 향해 달려갈 때 응원도 좋고 날씨도 좋아서 기분이 참 좋았지만, 1년 가까이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상상했던 감동의 순간은 없었다. 근육 경련 때문에 걷뛰를 해서 그런지 최선을 다 해보지도 못하고 끝나버린 레이스여서 그런 것 같다.

골인 후에도 체력은 남아 있었다. 다리가 만신창이여서 그렇지.

달리면서 이미 다음 대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모여서 (기억이 미화되기도 전에) ‘풀코스 할만 하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첫 풀코스에서 아쉬움을 남긴 덕분에 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다. 이제 풀코스 기록을 갖추었으니 서울마라톤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내년 1월 런저니 신청에 성공해서 코스가 쉬운 서울마라톤에서 서브4를 꼭 달성하고 싶다.

“2025 JTBC Seoul Marathon”에 대한 2개의 생각

    1. 늘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분히 돌아보니 그동안의 노력이 어디가진 않은 것 같아요.
      빠르게 회복하고 다시 또 꾸준히 달려보겠습니다.

하하하 에 응답 남기기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