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스는 끝났지만

디펜스는 무사히 끝났지만 내가 바라던 디펜스 후의 그 날은 아직 요원하다. 연구실 책상 옆 창가에 까치가 방금 지나갔다. 걸어서. KAIST에 사는 새들은 학생들처럼 귀차니즘을 즐기는 것인지 날기보다 걷는걸 좋아하는 것 같다. 반가운 사람을 불러온다는 까치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실에 아무도 없어 토요일 점심은 혼자먹을 팔자다. 이것이 내가 바라던 디펜스 후의 일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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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 하나.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 디펜스를 앞둔 한달 전만해도 지금 이 시간을 간절히 바랬다. 비록 학회에 제출할 논문을 쓰고 인수인계를 위해 몇가지 일을 해야하지만 그저 논문심사만 통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그 날이 지금 펼쳐지고 있지만 역시나 난 지금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또 바보처럼 “논문작업만 끝나면…” 이라는 단서를 달고 결코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을 살자. 가진 것에 감사하자. 일상에서 행복을 찾자.

석사학위논문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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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은 정말 잠을 이루기도 쉽지 않았고, 잠자는 내내 몇번을 깼다가 다시 잠을 청하곤 했다. 수능보기 전날 밤 잠 못 이루고 결국 30분 자고 시험보러 간 것에 비하면야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아 소심한 영혼이여!

7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단정히 머리를 손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여름정장(?)을 착용하고 잠자는 순일이를 뒤로하고 기숙사를 나섰다. 간밤에 잠을 설쳐서 그런지 동측기숙사에서 전자과에 이르는 짧은 구간에서만 연신 하품을 쏟아냈다. 하지만 의외로 덤덤했다.

연구실에 당도하여 눈물젖은 빵을 물고 간소하게 나마 이메일, 블로그를 둘러보았다. 9시에 내려가서 세팅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8시가 되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정확히 1시간. 최대한 낭랑하고 자신의 찬 목소리로 연습을 결행(?)했다.

9시가 되어 제2세미나실로 내려가 정성스럽게 의자를 정돈하고 다과를 세팅! 윤경누나, 정한형, 상운이가 도와주어 마음이 든든했다. 칼라프린트로 고이 출력한 슬라이드 자료를 가지런히 다과 옆에 두고 새신랑을 기다리는 새색시의 심정으로 다소곳이 교수님들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교수님들이 들어오시고 지도교수님이 나의 소개를 간단히 해주셨다. 그런데 한가지 해프닝은 우리 교수님이 나를 연세대학생으로 알고 계셨다는 사실.  발표는 우려와 다르게 엉키지 않고  90% 의도한대로 – 스크립트대로 – 술술 풀렸다. 다만 한가지 에러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 이윤준 교수님의 지적을 받았다는 사실.

발표가 끝나고 드디어 질문의 시작. 다른 두분의 교수님은 시작부터 우리 지도교수님의 디펜스를 원천봉쇄(?) 하신관계로 나는 외로이 질문공세를 막아내야했다. 다행히 교수님들이 웃으시면서 질문을 하셔서 분위기는 화개애매(?)했다. 이윤준 교수님의 파상공세에 당황하기 시작할 무렵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와 위기를 탈출 할 수 있었다. 몇일동안 작성한 예상질문과 모범답안은 역시나 무용지물이였다.

몇몇 질문에 교수님들이 원하는 것을 확실히 읽지 못하고 정확히 대답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차성덕 교수님이 “발표는 깔끔하게 잘했는데…” 라고 하신 말씀과 이윤준 교수님이 “한 일이 굉장히 많긴 한데…”라고 하신 말씀에서 통과하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보았다. 약간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숙사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연구실에 돌아왔더니 윤경누나가 교수님께서 수고했다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어서 마음이 놓였다.

졸업할 수 있겠지? 내 인생의 1막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